
반도체 얘기가 나오면 사람들은 대개 극자외선(EUV) 노광기부터 떠올린다. 웨이퍼, 리소그래피, 다음이 장비다. 그런데 요즘 업계 보고서를 보면 판을 흔드는 진짜 변수는 다른 데 있다. 가스다. 눈에 안 보이는 이 물질이 수율을 몇 퍼센트씩 변동시키고, 어떤 날엔 라인 하나를 통째로 세워버린다. 특수가스가 반도체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그런데 순도가 약간 흔들려도 웨이퍼가 폐기물로 나간다. 싸고, 그러면서 치명적이다.
반도체 가스 시장은 꾸준히 성장 중이다. 테크인사이츠(TechInsights)는 2026년 전자용 가스 시장을 약 68억1000만달러로 봤다. 특수가스는 전년 대비 5.8%, 벌크 가스는 4.9% 성장이다. 성장의 진짜 원인은 공정에 있다. 2나노미터(㎚) 시대를 여는 GAA 트랜지스터, 400단을 넘긴 3D NAND, HBM4에 실릴 초고집적 DRAM, 이 세 흐름이 겹치면서 초고순도 가스 수요가 오르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 요즘 부쩍 이름이 오르내리는 소재가 중수소, D2다. 수소의 안정 동위원소로, 중성자 하나가 더 붙었다는 것 말곤 겉으로 별 차이가 없다. 그런데 이 하나가 소자 수명을 좌우한다. 트랜지스터가 미세해질수록 채널 안을 지나는 전자들이 사나워지고, 이 고에너지 캐리어가 게이트 산화막 계면을 두드리면 이른바 핫캐리어 열화가 일어난다. 실리콘-수소 결합(Si-H)은 여기에 약하고, 실리콘-중수소 결합(Si-D)은 훨씬 잘 버틴다. 결합 안정성이 높은 덕분이다.
고압 중수소 어닐링을 거친 소자가 오래 도는 실험 결과는 이미 오래된 얘기다. 조사기관마다 편차는 있지만, 전자산업용 중수소 시장은 2020년대 후반까지 연 6~9% 성장 궤도에 올라섰다는 평가다.
D2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소재가 중수소화 암모니아, ND3다. 암모니아(NH3) 속 수소 세 개가 모두 중수소로 바뀐 물질인데, 국내에서는 아직 상용화 초입이다. 실리콘 질화막을 입힐 때 플라즈마 화학 기상 증착(PECVD)과 플라즈마 원자층 증착(PEALD) 공정에서 질소 원료로 흔히 쓰이는 것이 NH3다. 그 자리에 ND3를 넣기만 해도 같은 300~400도 조건에서 중수소가 박힌 질화막(SiN:D)이 만들어진다.
중수소로 바꾼 이유는 결합의 힘 차이다. 일반 암모니아로 만든 막에는 N-H, Si-H 같은 약한 결합이 남는다. 소자가 켜졌다 꺼졌다 하는 순간마다 튀어나오는 핫캐리어가 계면을 계속 두들기고, 약한 결합은 여기서 하나둘 끊어진다. 끊어진 자리는 전자를 붙잡아 두는 함정이 되고, 함정이 쌓이면 소자는 결국 수명이 다한다. 중수소 결합은 이 충격을 훨씬 잘 버틴다. 실리콘 질화막에 전하를 저장하는 SONOS와 3D NAND, 데이터를 오래 붙잡아 둬야 하는 고집적 DRAM이 이 소재를 반기는 이유다.
문제는 하나다. 국내엔 아예 생산 시설이 없었다. 완제품 ND3는 전량 해외, 대부분 일본 업체에 의존한다. 이 지점에서 흐름이 바뀌었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연구팀이 순도 99% 이상의 고순도 ND3를 국내 최초로 상업 규모에서 생산해냈다. 하버-보슈처럼 500도 이상 고온에 200기압을 걸어 합성하는 방식이 아니라, 독자 개발한 촉매로 조건을 뒤집었다. 압력은 기존의 5분의 1인 40기압 이하, 온도는 350도 이하. 하루 7.7㎏ 규모 설비로 1000시간 이상 연속 운전을 해냈다.
물론 파일럿 성공만으로 국산화가 끝난 건 아니다. 업계에서 필요한 초순도 스펙과 물량을 맞추고 라인 자격 심사를 통과해야 진짜 국산화라 부를 수 있다.
노광기 앞에서 찍은 사진은 요란하다. 그러나 진짜 승부는 훨씬 조용한 곳에서 벌어진다. 가스 한 병, 촉매 한 스푼. 이번 여름 대전의 한 연구동에서, 그 조용한 승부의 한 수가 놓였다.
윤형철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청정연료연구실 책임연구원 hyoon@kier.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