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홀드백 150일, 중소영화는 '벌크'로 팔린다

김용희 선문대 교수
김용희 선문대 교수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가 8월 '한국 영화 상생을 위한 홀드백 자율 협약' 체결을 목표로 민관협의체를 가동하고 있다. 극장 개봉 이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넘어가기까지 유예기간을 두자는 것이다. 국회에는 이미 6개월 의무화 법안이 올라가 있고, 협의체 논의 과정에서는 150일 안팎의 숫자가 오르내린다. 극장을 살리자는 취지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취지가 옳다고 수단까지 옳은 것은 아니다. 이 숫자가 시장에서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는 따로 따져봐야 한다.

홀드백은 시간을 정하는 규제처럼 보이지만 실질은 가격을 정하는 규제다. 영화의 2차 판권 가격은 그 영화가 OTT에 들어가는 시점의 시장 가치로 결정된다. 그 시점을 정부와 업계가 합의해 뒤로 미루면 미룬 만큼 가격이 달라진다. 며칠을 늦출 것인가를 논의하는 자리는 사실상 누구의 판권값을 얼마나 깎을 것인가를 정하는 자리다. 이 점부터 인정하고 시작해야 논의가 정직해진다.

OTT가 극장 영화를 사는 이유는 크게 둘이다. 하나는 신작의 화제성으로 신규 가입자를 끌어오기 위해서고, 다른 하나는 라이브러리를 채우기 위해서다. 앞의 수요는 시간에 극도로 민감하다. 개봉 당시 만들어진 관심은 몇 주 단위로 반감하고, 그 관심이 식으면 신규 가입을 끌어낼 힘도 함께 사라진다. 뒤의 수요는 다르다. 기존 가입자의 이탈을 막는 것이 목적이므로 작품이 언제 나왔는지는 거의 중요하지 않다. 5년 전 영화든 지난달 영화든 목록의 한 줄이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홀드백을 길게 잡으면 앞의 수요가 사라진다. 개봉 5개월이 지난 영화로 신규 가입자를 유치하겠다는 플랫폼은 없다. 필자는 이 현상을 '시든 채소 이론'이라 부른다. 채소는 밭에서 뽑는 순간부터 값이 떨어진다. 창고에 오래 둔다고 귀해지지 않고, 시들고 나면 골라 담지 않고 상자째 넘긴다. 콘텐츠도 다르지 않다. 신선도는 개봉과 함께 정해지고, 유예기간은 그 신선도를 지켜주는 장치가 아니라 소진시키는 장치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은 시드는 방식이다. 어느 날 갑자기 상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조금씩 시든다. 특정 시점에 가치가 뚝 떨어지니 그 직전까지 묶어두면 된다는 논리가 성립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는 것은 라이브러리 수요뿐이고, 문제는 이 두 수요의 거래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다. 화제성을 사는 거래는 작품 단위로 값을 매기지만, 라이브러리를 채우는 거래는 묶음 단위로 값을 매긴다.

이것이 이른바 벌크 거래다. 편당 얼마가 아니라 몇 편에 얼마로 값이 정해지고, 개별 작품의 완성도나 흥행 이력은 단가에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 여러 편을 한 계약에 담아 총액을 정한 뒤 편수로 나누는 방식이니, 공들여 만든 영화와 그렇지 못한 영화가 같은 값을 받는 일이 생긴다. 협상 테이블에서 배급사가 꺼낼 카드도 사라진다. 이미 관심이 식은 작품을 두고 값을 올려 달라 요구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홀드백이 길어질수록 중소 영화의 2차 판권은 개별 상품에서 묶음 재고로 이동한다.

예외가 있다. 브랜드가 시간을 견디는 작품, 즉 블록버스터다. 1000만 관객을 모은 영화는 5개월 뒤에도 제목만으로 협상이 된다. 시리즈물이거나 스타 감독의 작품이면 더 그렇다. 이런 작품은 유예기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개별 계약으로 제값을 받아낸다. 이들에게 150일은 불편한 조건이지 치명적인 조건이 아니다. 규제의 부담이 작품 규모에 따라 전혀 다르게 떨어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일률적인 홀드백은 중립적인 규칙이 아니다. 대작에는 사실상 무해하고 중소·중형 영화에는 2차 판권 가격을 직접 깎는 차별적 규제로 작동한다. 더구나 극장 수익은 소수 대작에 극단적으로 집중돼 있다. 중소 영화 대부분에게 극장은 손익을 맞추는 창구가 아니라 인지도를 만드는 창구이며, 실제 회수는 2차 창구에서 이뤄진다. 이들에게 홀드백 연장은 보호가 아니라 회수 지연이고, 지연된 만큼 값이 깎이는 이중의 손실이다.

회수가 늦어지고 단가까지 깎이면 다음 작품의 제작비가 마련되지 않는다. 중소 제작사는 한 편의 정산이 다음 편의 착수금이 되는 구조로 버틴다. 2차 판권 대금이 몇 달 밀리고 그 사이 값이 떨어지면 다음 라인업이 사라진다. 규제를 설계하며 상정한 부담 주체는 글로벌 플랫폼이었겠지만, 실제로 비용을 치르는 곳은 제작 현장이다.

결국 극장을 지키려는 규제가 극장에 걸릴 영화를 줄인다. 지금 극장이 겪는 어려움의 본질은 관객이 OTT로 옮겨갔다는 것만이 아니라 극장에 걸 만한 한국 영화가 줄었다는 데 있다. 개봉 편수와 투자 규모가 회복되지 않는 한 며칠의 유예기간은 극장의 좌석을 채워주지 못한다.

해외 사례도 신중하게 읽어야 한다. 법으로 홀드백을 정하는 프랑스가 자주 인용되지만, 프랑스의 긴 유예기간은 플랫폼에 자국 콘텐츠 투자 의무를 지우고 그 대가로 기간을 조정해 주는 교환 구조 위에 서 있다. 투자 협약을 맺은 사업자일수록 기간이 뚜렷하게 짧아진다. 반면 미국은 업계 자율 합의로 45일 안팎까지 내려왔고, 영국과 일본도 법이 아니라 관행으로 운영한다. 기간만 떼어다 옮겨오면 교환의 절반만 수입하는 셈이 된다.

논의의 틀을 바꿔야 한다. 홀드백은 유통 사슬 위에 놓인 여러 변수 중 하나일 뿐이다. 극장에서 건별 결제 시장으로, 구독형 서비스로, 해외 판권으로 이어지는 공급망 전체에서 수익이 어디서 발생하고 어떻게 배분되는지를 놓고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창구 하나의 날짜를 조정해 다른 창구의 몫을 옮기는 방식으로는 파이가 커지지 않는다.

홀드백 연장이 2차 판권 거래를 바꾸는 경로  (자료=김용희 교수)
홀드백 연장이 2차 판권 거래를 바꾸는 경로 (자료=김용희 교수)

협약을 맺더라도 최소한 세 가지는 못 박아야 한다. 첫째, 기산점과 기간은 최소화되어야 한다. 흔히 사례로 언급되는 북미 시장의 '홀드백' 기준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북미는 기본적으로 상영관 시장이 장기간 와이드 릴리스 방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자율적으로 형성된 북미의 45일 홀드백 기준은 사실상 '최소 기간'에 해당한다. 반면 국내의 경우, '왕의 남자'가 29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한 것처럼 첫 주말부터 2주 사이의 스코어만으로 흥행 여부를 상당 부분 예측하고, 짧은 기간에 관객이 집중되는 구조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같은 홀드백 제도를 적용하더라도 국내에서는 오히려 '최대 기간'으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 따라서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상영일을 기준으로 삼되, 상생 협의의 취지에 맞춰 기간은 최대한 짧게 설정하고, 그 이후는 업계의 자율적인 협상에 맡기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둘째, 대상 창구 설정 방식이다. 상영관 산업을 보호하겠다는 취지가 자칫 영화 유통시장을 선형적인 단계 구조로 고정하는 결과를 낳아, 시장 전체를 위축시키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과거와 달리 현재는 다양한 사업자들이 각자의 비즈니스 모델에 따라 VoD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 일괄적으로 '유통 순서'로 규정해 강제한다면, 오히려 영화의 가치를 훼손하고, 편법적인 시장 침해를 양산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이 점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셋째, 차등 적용의 원칙이다. 정부가 주도하는 상생 협의라 하더라도, 자유시장주의에 기반한 사업자의 자율 선택이 최우선 원칙으로 보장돼야 한다. 극장 개봉 전에 제작사·투자·배급사가 유통 사업자와 다양한 방식으로 협상하는 관행에 대해 일률적인 제재가 가해져서는 안 된다. 더불어 중소 영화와 대형 영화 간의 차이를 고려해야 하며, 손익분기점에 도달하지 못한 작품에 대한 예외 규정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상영관 시장의 회복·지원·개선을 위해서는, 홀드백 논의보다 더 직접적인 정책 수단이 있는지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스크린 배분의 다양성 확대, 관람료 부담 완화, 부율 조정 등은 관객과 산업 전반에 더 즉각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방안이다. 이제는 정부와 업계가 다시 한 번 머리를 맞대고, 이러한 실질적인 대안들을 함께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균형점은 날짜에서 나오지 않는다. 어느 창구가 며칠을 더 갖느냐를 정하는 협상은 제로섬이다. 시든 채소를 상자째 넘기게 만들어 놓고 밭이 풍성해지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극장과 플랫폼, 배급과 제작이 각자 만들어낸 가치를 어디서 어떻게 회수하는지를 함께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8월의 합의가 숫자 하나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김용희 선문대 경영학과 교수 yhkim1981@sunmoon.ac.kr

〈필자〉선문대 경영학과 교수이자 오픈루트 연구위원으로 정보통신기술(ICT)과 미디어 분야 전문가다. 미디어와 경영 관련 학회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미디어 정책 관련 각종 연구반과 태스크포스(TF)에서 활동하며, 미디어 산업을 보는 폭넓은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미디어 산업에 사회·경제 효과 연구를 지속하고 있으며, 미디어 컨설팅과 연구를 수행하는 오픈루트를 운영하고 있다.

  • ET Ev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