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자살예방 대책을 내놓고 있다. AI가 고위험군에게 먼저 전화를 걸고 상담을 연결하거나 위험 신호를 감지하는 기술은 분명 의미 있는 시도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만으로는 자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AI의 성능은 결국 데이터의 품질을 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작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AI가 아니라 데이터다. 우리 사회에는 자살과 관련된 정보가 기관별로 흩어져 있다. 경찰은 심리부검 자료를 보유하고, 행정기관은 사망신고 자료를 관리한다. 의료기관에는 정신건강과 진료기록이, 고용기관에는 직업과 실업 정보가, 지방자치단체에는 복지와 주거 정보가 존재한다. 각각의 자료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지만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 이른바 '송파 세모녀' 사건 이후 정부는 '사회보장정보시스템'과 조직을 정비해 왔다. 빅데이터 활용모델을 이용해 지자체와 연계해 왔으나 달라진 것은 시스템 구축비용 정도다.
이러한 현실에서는 AI도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개별 데이터만으로는 자살의 원인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특정 연령대의 자살률이 높다는 사실은 알 수 있지만, 그 이면에 실직과 경제적 어려움, 만성질환, 가족관계 변화, 지역사회 고립 등이 어떻게 복합적으로 작용했는지는 분석하기 어렵다. 결국 AI는 단편적인 패턴만 학습하게 되고, 예방정책 역시 단편적인 처방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진정 AI 기반 자살예방을 추진하려면 우선 국가 차원의 데이터 통합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개인정보 보호는 철저히 보장하되 연구 목적의 안전한 결합과 분석은 가능하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해외 여러 국가에서는 이미 익명화 기술을 활용해 의료·복지·교육·고용 데이터를 연계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자살과 중독, 범죄 예방 정책의 정확성을 높이고 있다. 놀랍게도 현재 막힌 담은 '가명정보 처리'일 수도 있다. 모두 다 데이터 개방을 말하지만 최소한의 조치에 소홀한 것이다.
연구 환경 역시 달라져야 한다. 자살은 의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신의학과 심리학은 물론 사회학, 행정학, 경제학, 데이터과학, AI, 복지학이 함께 접근해야 하는 대표적인 융합 과제다. 그러나 현실의 연구지원 체계는 학문 분야별 칸막이가 여전히 높다. 연구비 심사도 전공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융합 연구는 취지는 강조되지만 실제 선정 과정에서는 오히려 불리한 경우가 적지 않다. 서로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이 협력할수록 기존 평가기준과 맞지 않아 혁신적인 연구가 탈락하는 역설도 반복된다.
AI는 결코 만능이 아니다. 양질의 데이터와 이를 해석하는 다양한 학문의 협력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도구가 된다. 자살예방 역시 마찬가지다. AI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연결된 데이터와 융합적 연구가 AI를 통해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정부가 발표해야 할 진정한 AI 자살예방 대책은 새로운 알고리즘의 개발이 아니다. 기관 간 데이터 장벽을 허물고, 연구의 칸막이를 없애며, 융합 연구가 실제로 작동하는 생태계를 만드는 일이다. AI는 그 이후에야 비로소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임성은 서경대 공공인재학부 교수·전 서울기술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