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약사가 개설한 한약국의 첩약 건강보험 조제 청구가 시범사업 시행 이후 2년째 단 한 건도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법적으로 한약사에게 한약 조제 권한이 있지만 처방전을 받아 조제하고 비용을 청구할 경로가 사실상 막힌 셈이다.
2일 전자신문 취재에 따르면 복지부가 2024년 4월부터 시작한 2단계 첩약 건강보험 시범사업에서 지난해까지 한약국이 청구한 '약국탕전' 실적이 0건으로 파악됐다. 약국탕전은 한방의료기관이 첩약을 처방하고 외부 약국이 이를 조제하는 방식이다.
같은 기간 조제탕전료 청구 전체는 225만6000건으로 청구액이 648억원 규모에 달했다. 한의원에 소속된 한약사와 한약조제약사가 청구한 실적은 약 32만건, 65억원 규모였다. 이들 청구건수는 2024년 10만8000건에서 지난해 21만6000건으로 두 배 증가했다.
결국 한방의료기관에서 한약사가 첩약을 조제하고 건강보험 비용을 청구하고 있지만 한약국에서는 처방전을 받지 못해 동일 업무가 생기지 않고 있는 셈이다.
약사법 제23조 6항에 따르면 한약사는 한의사의 처방전에 따라 한약을 지을 수 있다. 첩약 시범사업도 한의사가 처방하고 한약국이 조제하도록 돼있으나, 한방의료기관이 외부 한약국에 처방전을 발행하지 않으면서 한약사 조제·청구 통로가 사실상 막혀 있다.
자동차보험에서는 한약국이 청구 주체에서 배제돼 있다. 국토교통부 고시상 청구 주체가 '의료기관'으로 한정돼 있어 한약국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조제 비용을 직접 청구할 수 없다. 한약국이 진료수가 심사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처럼 조제 통로가 막히면서 약국을 개설한 한약사 1200여명(전체 3500여명)은 본래 업무인 조제가 아닌 일반의약품 판매에 의존하고 있다.
다만 이들의 일반의약품 판매도 쉽지 않다. 약국을 개설한 한약사가 의약품 거래를 거절당했다는 국민신문고 민원은 2023년과 2024년 각 2건에서 지난해 44건으로 늘었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이 지난해 한약사의 일반의약품 판매는 불법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의약품을 공급받는 게 원활하지 않은 것이다.
복지부는 최근 보건의료인력의 구체 업무 범위와 직역 간 조정 사항을 심의하는 '보건의료인력 업무조정위원회'를 구성하고 한약사 직역 갈등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보건의료기본법 개정에 따른 신설 기구로, 약사와 한약사의 업무 범위는 산하 의료행위 제2분과에서 다뤄진다.
약학계 일각에서는 한의약 분업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약사와 한약사 면허를 통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한약학회장을 지낸 정세영 경희대 약학대학 명예교수(전북대병원 의생명연구원 석좌교수)는 “한의약분업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한약사 제도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며 “정부가 나서서 일원화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존 한약사 면허를 온라인 이수·실무 교육·시험을 거쳐 약사 면허로 전환하는 방안이 현실적일 것”이라고 제언했다.
익명을 요구한 모 약학과 교수는 “한약국이 약국탕전 청구를 한 건도 하지 못한 것은 한약사가 약국에서 조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경로가 제도적으로 봉쇄됐고 한의사·한약사 간 처방·조제 기능이 분리된 현행 제도에 근본적 결함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직역을 통합해 기능을 일원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직역 통합은 이해관계가 첨예한 사안”이라며 “직역 효율화를 포함한 갈등 해결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중권 기자 lim918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