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덜란드 로테르담 중심가 비넨베흐플레인. 전자제품 매장 '미디어마크트 테크 빌리지 로테르담' 안으로 들어서자 나란히 진열된 제품 대신 실제 집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주방과 거실, 다용도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20평대 공간이다. 인접한 브랜드들이 냉장고와 세탁기를 줄 세운 것과는 확연히 다른 풍경이다.
이곳은 1000개 이상 매장을 운영하는 유럽 최대 가전 유통 체인 미디어마크트자툰이 주요 도시 핵심 상권에 운영하는 전략 거점 매장이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혁신적 고객 경험을 제시한다는 의미로 '등대 매장'으로도 불린다.
LG전자는 지난해 11월 이 매장을 28㎡(약 8평)에서 73㎡(약 22평)로 3배 가까이 넓히고, 제품 진열대를 생활 공간 형태로 전면 개편했다.
제이 로머스 LG전자 베네룩스법인 마케팅팀 책임은 “개별 제품의 장점보다 LG가 제공할 수 있는 경험을 보여주는 데 중점을 뒀다”면서 “가전을 일상에서 어떻게 쓰면 어떤 편리함이 있는지 직관적으로 확인하도록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입점한 10여 개 브랜드 중 매장 안에 실제 가정 환경을 구현한 곳은 LG전자가 유일하다.
주방에는 공간 효율성을 높인 빌트인 오븐, 인덕션, 식기세척기가 배치됐다. 매장 곳곳에는 유럽 최고 에너지효율 등급인 A등급 냉장고와 A등급 기준보다 40% 높은 효율을 갖춘 세탁기 등 고효율 가전이 다양하게 놓였다. LG전자는 가전 핵심부품에 AI를 접목한 'AI 코어테크'를 기반으로 성능과 에너지 효율을 함께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AI홈 솔루션 시연도 이어졌다. LG전자 AI홈 플랫폼 '씽큐'와 스마트홈 허브 '호미'를 연동하면 세탁기 작동이 끝날 때 거실 조명이 켜지거나 알림이 울리도록 설정할 수 있다. 창문 센서를 에어컨과 연결하면 창문이 열릴 때 에어컨 가동이 자동으로 멈춘다.
가장 눈에 띈 장면은 냉장고와 에어컨 간 '대화' 시연이었다. 냉장고가 한 시간 안에 냉각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에어컨에 이를 알리고, 에어컨은 방 온도를 먼저 낮춘 뒤 다시 상황을 공유한다. 이미 방이 충분히 낮은 온도라면 냉장고는 냉각 시점을 한 시간 늦춰 에너지를 아낀다. 건조기나 세탁기 가동 시점도 전력 수요가 몰리는 시간대 대신 태양광 발전량이 많은 오후로 자동 조절된다.
성과는 매출로 확인됐다. 리모델링 이후 올해 상반기 기준 이 매장 매출은 전년 대비 20% 이상 늘었다. 2026년 기준 네덜란드 내 LG전자 오프라인 매장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한다. LG전자는 단일 제품 대신 패키지로 구매하는 고객이 늘고, AI홈 솔루션 체험이 구매 결정에 영향을 준 것을 주된 요인으로 꼽았다.
네덜란드는 인구밀도가 높아 주거 공간이 좁고 주택 가격도 비싼 편이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이 제품 선택에 까다롭고 고사양·고효율 제품에 대한 수용도가 높다는 게 현지 관계자 설명이다.
LG전자는 이미 이 시장에서 밀레 등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와 경쟁하는 고가 라인으로 자리 잡았다. 로머스 책임은 “저가 브랜드는 직접적인 경쟁 상대가 아니다”라며 “스마트·AI 기능에서는 경쟁사보다 앞서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매장은 일반 소비자용 체험 공간을 넘어 현지 인테리어·건축업체를 위한 B2B 쇼룸으로도 쓰인다. 거래선들이 주방과 거실에 설치된 제품의 디자인과 기능은 물론, 실제 주거 공간에 적용했을 때의 모습과 설치 조건까지 함께 확인할 수 있어 호응이 높다는 설명이다.
올리비어 반 덴 보서 미디어마크트 CEO는 이 매장을 방문해 “여태 본 매장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했다.
LG전자 관계자는 “공간 솔루션 매장을 지역과 상권 특성에 맞춰 점차 확대할 계획”이러면서 “현재는 시범 형태로 운영 중이며, 반응이 좋아 추가 확대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네덜란드 로테르담=
김시소 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