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소 제조기업의 AX는 비싼 솔루션을 사는 것에서 시작하는 게 아닙니다.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직접 AI를 활용해 자기 일을 바꾸게 만들어야 합니다.”
조상현 엠에이케이(MAK) 사장은 중소 제조기업이 성공적으로 인공지능 전환(AX)을 추진하기 위한 핵심 조건으로 '현장 내재화'를 꼽았다. 부족한 자금과 AI 전문 인력을 외부 솔루션으로 메우는 방식보다는, 기존 현업 인력이 생성형 AI를 활용할 수 있도록 역량을 키우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설명이다.
10일 경기도 화성 엠에이케이 사옥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조 사장은 “AX를 단순한 정보기술(IT) 도입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AX는 IT 부서의 전산화 작업이 아니라 회사의 비즈니스 프로세스와 조직 문화를 통째로 재설계하는 경영 혁신”이라며 “경영자가 AI의 본질과 한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중간 관리자와 현장의 저항을 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CEO가 직접 현업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면서 실패해도 좋으니 단 1시간의 비효율이라도 덜어내자는 확신을 심어야 조직 전체가 움직인다”고 덧붙였다.

엠에이케이가 지난 2월 AX혁신실을 출범한 뒤 가장 먼저 맞닥뜨린 문제 역시 기술이나 예산이 아니라 직원들의 심리적 저항이었다.
“우리는 코딩도 모르는 기계 제조업체인데 AI가 왜 필요하냐”, “바쁜데 또 새로운 프로그램을 배워야 하느냐”는 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회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거창한 전사 프로젝트보다 각 부서 직원들이 가장 불편해하던 업무부터 골랐다. 영수증 정산이나 반복적인 도면 작업처럼 즉각 효과를 체감할 수 있는 업무를 AI로 줄여나가는 방식으로 점진적 도입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조 사장은 당시 조직 운영 방식을 더욱 단순하게 설명했다. 정식 회의를 길게 열기보다 직원들과 커피를 마시며 “부서마다 가장 짜증 나고 힘든 업무가 뭐냐”고 물었고, 여기서 나온 업무를 하나씩 자동화 과제로 삼았다는 것이다.
성과를 낸 직원의 프롬프트와 방법은 다른 직원에게 공유했다. AI에 익숙한 실무자를 중심으로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방식이 자리 잡으면서 도입 초기의 반감도 빠르게 줄었다.
이 때문에 조 사장은 회사 전체의 AX로 발전하려면 경영진의 의지와 함께 '현장 챔피언'이 필요하다고 봤다. 단순히 생성형 AI 계정을 나눠주고 자유롭게 써보라고 하는 것만으로는 조직의 업무 방식이 바뀌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부서별 에이스를 AI 챔피언으로 지정하고 업무시간에 AI를 실험할 수 있도록 권한과 환경을 열어줘야 한다”며 “한 직원이 만든 자동화 프롬프트나 코드를 사내에서 축적·표준화하고 다른 직원이 다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 사장은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외부 기업과 기관을 대상으로 AX 강연에도 나서고 있다. 외부에서 가장 관심을 보이는 부분 역시 대규모 투자 없이 현업 직원이 직접 시스템을 구축한 과정이다.

그는 “많은 중소기업이 수억원짜리 기성 솔루션을 구매했다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거나 개발자를 채용하지 못해 포기한다”며 “현업의 도메인 지식과 범용 대규모언어모델(LLM)을 결합해 내부에서 필요한 도구를 직접 만드는 방식을 가장 궁금해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10인 이하 영세 제조업체 관계자들은 엠에이케이가 개발한 경비 정산 프로그램이나 프롬프트 생성 도구 등을 사용할 수 없느냐고 문의한다고 전했다. 다만 각 회사의 데이터와 비용 부담, 사후 유지·보수 문제 때문에 자사 시스템을 그대로 외부에 제공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엠에이케이는 향후 범용화 가능성을 검토하면서도 현재로서는 본업에 우선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중소 제조기업의 AX 확산을 위해서는 공공 지원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고 봤다. 조 사장은 지자체나 산업진흥원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 규모의 고가 솔루션 구매를 지원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현장 실무자의 AI 역량을 기업 내부에 남기는 방식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소기업 실무 엔지니어가 범용 AI를 다루고 사내 업무를 직접 코딩·자동화할 수 있도록 실전형 AI 코칭과 챔피언 육성, 사내 해커톤 같은 프로그램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만나는 기업의 수준과 규모에 따라 필요한 지원 방식도 다르다고 진단했다. 이미 자체적으로 AX를 추진할 역량이 있는 중소기업의 성공 사례는 빠르게 발굴해 확산시키고, AI에 접근하기조차 어려운 영세 소기업에는 범용 프로그램을 저렴하게 보급하는 '투트랙'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화성시중소기업자문위원단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조 사장은 지역 제조기업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로 숙련 기술인력 부족과 원가 상승 압박을 꼽았다.
화성에는 반도체와 자동차, 장비·부품 기업이 밀집해 있어 현장 데이터와 제조 도메인 지식은 풍부하지만 서울·판교와 비교해 IT·소프트웨어 및 AI 전문 인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구인난으로 기존 직원의 야근이 늘고, 다시 인재 이탈로 이어지는 악순환도 나타난다고 봤다.
조 사장은 “인력 병목을 깨기 위해서는 AI를 통한 1인당 생산성 혁신이 필요하다”며 “외부 개발자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방식보다 현업에서 필요한 기술을 직접 내재화하는 모델이 지역 제조 생태계에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AX가 곧바로 사람을 대체할 것이라는 시각에도 선을 그었다. 특히 엠에이케이처럼 고객사 요구에 따라 개별 장비를 설계·제작하는 주문형 제조업은 동일 제품을 반복 생산하는 산업보다 피지컬 AI 적용에 시간이 더 걸릴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조 사장은 “혼란기는 분명 오겠지만 지금부터 인력을 줄일 것을 전제로 걱정할 단계는 아니다”며 오히려 현업 경험을 보유하면서 AI를 능숙하게 활용하는 인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엠에이케이 역시 AX혁신실의 역할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전 부서 20명 이상의 AI 챔피언을 중심으로 각 업무 프로세스가 AI와 연결되는 조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다. 내부 AX 경험을 바탕으로 중장기적으로 협력사와 동종 제조기업에 저비용 실전 AX 모델을 전파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조 사장은 현장 인터뷰에서 회사의 중장기 성장 목표도 제시했다. 내년 기술보증기금의 예비 유니콘 기업 신청을 추진하고, 3년 내 기술특례상장, 5년 내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그는 최종적인 목표를 “현장 엔지니어가 반복적인 수작업과 데이터 정리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창의성과 장인정신을 고부가가치 제조 업무에 집중하는 기업”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MAK 하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가는 선도 기업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며 “사업 전환과 고용 창출뿐 아니라 뛰어난 인재를 만들어내는 기업으로 발전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