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책임을 질 수 없다. 어떤 결과가 발생하든 책임은 AI를 설계하고 활용하는 인간에게 있다.”
노벨상 수상자 3인을 비롯한 세계적 석학들이 인공지능(AI)이 과학 난제를 해결할 강력한 도구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동시에 AI가 내놓은 결과에 대해 인과관계를 규명하고 연구 전 과정을 통제하는 인간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AI가 오랜 기간 풀지 못한 과학적 문제를 극복하는 속도를 높일수록 그 방향과 책임을 결정하는 인간의 판단력이 핵심 경쟁력이 된다는 진단이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과 스웨덴 노벨재단 산하기관인 노벨프라이즈아웃리치(NPO)는 2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노벨프라이즈 다이얼로그 서울 2026'을 개최했다.
NPO는 매년 세계를 돌며 노벨상 수상자, 과학자, 정책가, 각 분야 리더가 대중들과 글로벌 현안에 대해 토론하는 행사를 열고 있다. 노벨프라이즈 다이얼로그가 서울에서 열린 것은 2017년, 2023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AI가 가져올 과학계 변화를 주제로 삼은 이번 행사에서 2011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브라이언 슈미트 호주국립대 교수는 인간의 책임을 역설했다. 초신성을 관측해 우주가 가속 팽창하고 있음을 규명해 노벨상을 받은 슈미트 교수는 1994년부터 연구에 AI를 도입했다.
슈미트 교수는 “AI는 수학자만의 영역이던 난제를 해결하는 등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바꿀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AI는 인간이 만든 것이고 우리에게 도움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통적인 인간 연구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취지다.

2021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데이비드 맥밀런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화학 분야에서 AI가 연구를 가속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새롭게 질문하는 능력을 갖게 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금속이나 효소 없이 작은 유기분자만으로 촉매 반응을 일으키는 '비대칭 유기촉매'를 개발했다.
맥밀런 교수도 AI 시대에 인간의 창의성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의약품 개발에 AI를 많이 활용하고 있지만 생명체가 워낙 복잡해 우연에 기대는 경우도 있다”면서 “AI가 화학 연구에 미칠 영향을 살피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의 창의성을 바탕으로 AI를 어떻게 새롭게 활용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2006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크레이그 멜로 미국 매사추세츠대 교수 역시 AI 역할에 한계가 있다고 봤다. RNA 간섭 현상을 발견해 노벨상을 받은 그는 “AI가 과거 공상과학에 나온 인류 종말을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행사에서는 AI를 연구 현장에 올바르게 활용하기 위한 교육의 중요성이 대두됐다.
'설명 가능한 AI' 연구의 권위자인 이수인 미국 워싱턴대 교수는 “AI가 인간보다 더 빠르게 계산할 수 있는 것이 많지만 인간은 문제의 우선순위를 선정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서 “젊은 세대는 AI 문해력, 탄탄한 통계 기반을 갖추고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한 기술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과기한림원은 이번 행사가 AI와 기초과학 연구의 가치를 알리고 우리나라 노벨상 수상 기반을 다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과기한림원은 이번 행사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한나 셰르네 노벨재단 사무총장 등 함께 방한한 연사와 국내 과학기술인의 교류 기회를 마련하고 노벨상 수상자가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강연하는 연계 행사도 열었다.
정진호 한림원장은 “AI는 과학 연구의 패러다임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으며 그 미래를 함께 고민해야 할 중요한 시점”이라면서 “이번 노벨프라이즈 다이얼로그 서울은 한림원이 지속 추진한 AI와 과학에 관한 논의를 세계적 석학들과 함께 한 단계 더 발전시키고 AI 시대 과학의 미래를 국민과 함께 그려본 뜻깊은 자리”라고 말했다.
송윤섭 기자 sy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