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과학기술원(GIST·총장 임기철)은 김승준 AI학과 교수팀이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 컴퓨터과학·인공지능 연구소(CSAIL) 연구진과 공동으로 의자에 앉은 상태에서도 가상현실(VR) 속 평지와 오르막·내리막을 걷는 듯한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가상보행 시스템 '이엠에스 워커(EMSWalker)'를 개발했다고 30일 밝혔다.
이 시스템은 사용자가 양발의 앞부분을 번갈아 들었다 내리면, 발 움직임을 가상공간의 걸음과 연결하고 그 순간 걷는 데 사용되는 다리 근육을 전기로 자극하는 방식이다.
최근 가상현실(VR) 기술은 실제와 비슷한 가상공간을 구현할 수 있을 만큼 발전했지만, 화면 속에서 걷는 모습과 몸으로 느끼는 보행 감각 사이에는 여전히 차이가 있다. 실제 보행은 평지와 오르막·내리막에 따라 사용하는 다리 근육과 힘을 주는 시점이 달라지지만, 의자에 앉아 발을 움직이는 기존 방식만으로는 이러한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 경사진 바닥을 구현하는 별도의 장치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공간과 장비가 필요하다.
연구팀은 이에 실제로 걷지 않더라도 발의 움직임에 맞춰 '지금 걷고 있다면 사용될 근육'을 자극하면, 앉은 상태에서도 걷는 데 필요한 신체 감각을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EMSWalker는 사용자가 의자에 앉아 발 앞부분을 들었다 내리는 '풋 태핑(Foot tapping)' 동작을 실제 걸음과 연결한다. 발 앞부분을 들어 올리면 가상공간에서 다리를 앞으로 내딛고, 다시 내리면 발을 땅에 디디는 식이며, 발을 움직이는 속도에 따라 걷는 속도도 달라진다.
이러한 발 움직임에 맞춰 허벅지 앞쪽과 정강이, 종아리 등 해당 순간 보행에 사용되는 주요 근육에 전기근육자극(EMS)을 전달해, 실제로 걸을 때처럼 다리 근육이 쓰이는 느낌을 더한다. 자극의 시점과 세기는 평지·오르막·내리막에서 나타나는 근육 사용의 차이에 맞춰 달리했다.

연구팀은 먼저 근육 자극을 더했을 때 의자에 앉아 발만 움직이는 동작을 가상공간 속 자신의 보행으로 받아들이는 감각이 높아지는지 사용자 실험으로 확인했다. 걷는 동작의 각 단계에 맞춰 다리 근육을 자극한 결과, 사용자는 자신의 몸이 가상공간의 아바타가 있는 쪽에 더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꼈으며, 아바타를 자신의 몸처럼 느끼는 '체화감'도 근육 자극이 없을 때보다 높아졌다.
이어 근육 자극만으로 평지·오르막·내리막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는지 확인했다. 화면에 걷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채 세 지형에 해당하는 근육 자극만 제공한 결과, 사용자는 모든 지형을 우연히 맞힐 확률인 33%보다 높은 정확도로 구분했다.
오르막은 78%, 평지는 72%, 내리막은 58%의 정확도로 구분했으며, 세 지형 모두 우연히 맞힐 확률인 33%를 웃돌았다.
마지막으로 평지와 경사가 있는 실제 VR 환경에서 EMSWalker가 가상보행 경험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펴봤다. 연구진 △근육 자극이 없는 경우 △발이 땅에 닿을 때만 자극하는 경우 △지형과 관계없이 같은 근육을 자극하는 경우 △평지·오르막·내리막에 맞춰 근육 자극을 바꾸는 경우를 비교했다.
그 결과, 지형에 맞춰 근육 자극을 바꾼 경우 사용자가 가상공간에 실제로 들어가 있는 듯 느끼는 '현존감'이 다른 세 경우보다 높게 나타났다.
반면 VR 멀미나 가상보행 과정에서 느끼는 신체적·정신적 부담은 네 경우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없었다.
이번 연구는 넓은 보행 공간이나 경사진 바닥과 같은 대형 장치 없이도 사용자의 발 움직임과 다리 근육 자극을 연결해 평지와 경사를 걷는 신체 감각을 가상현실에서 전달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데 의미가 있다.
향후 VR 게임·훈련 등 공간이 제한된 환경에서 사용하는 몰입형 콘텐츠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김승준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가상공간에서 눈으로 보는 지형의 변화에 맞춰 몸으로 느끼는 보행 감각도 달리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며 “향후 다양한 경사와 지면 특성까지 표현할 수 있도록 기술을 확장해 보다 풍부한 가상 이동 경험을 구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남광주=김한식 기자 hs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