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태어난 뒤 60년이 지나 맞이하는 생일인 '환갑(還甲)'. 예로부터 환갑은 단순히 나이가 드는 것을 넘어 인생의 매우 특별하고 상징적인 전환점으로 여겨졌다. 전통 역법인 60갑자가 온전히 순환하고, 다시 태어난 해의 간지와 똑같이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 60년이다. 즉 환갑은 60년의 한 주기를 마감하고 새로운 인생의 주기가 시작된다는 의미가 있다.
내년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에 환갑 잔치가 열린다. 바로 과학기술 전담 부처인 '과학기술처'가 처음 출범한 지 6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처가 출범한 1967년 4월 21일 당시 우리나라는 전쟁의 상처가 여전히 남아 있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다. 그런데도 과학기술 전담부처를 만든 것은 과학기술로 미래를 개척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담은 것이었다. 정부는 독립된 전담 부처를 세워 국가 발전의 방향타를 과학기술에 맞췄고, 그 선택은 한국 현대사 최고의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사람이 태어나 60갑자를 돌 듯, 과학기술 전담 부처가 출범한 뒤 60년이라는 세월 동안 수많은 변화와 위기를 겪어내며 역사의 한 주기를 온전히 채웠다. 단순히 오래됐다는 것을 넘어 지난 60년의 의미와 성과도 남다르다.
각 부처에 산재해 있던 과학기술 정책을 과기처로 일원화하고, 국가 차원의 전략을 마련하면서 체계적인 과학기술 진흥이 가능해졌다. 60년을 거치는 동안 과기처에서 부로 승격하면서 과학기술부가 됐고, 부총리 부서로 승격도 했다. 또 미래창조과학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으로 이름과 조직 형태는 조금씩 바뀌었지만, 과학기술로 미래를 개척하겠다는 근본 정신은 흔들림 없이 이어왔다.
이에 힘입어 우리나라 과학기술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독보적인 성장을 보여줬다. 짧은 기간의 압축 성장을 통해 현재 대한민국은 반도체, 이차전지, 조선, 우주항공, 인공지능(AI)에 이르기까지 첨단 분야를 선도하는 기술 강국으로 도약했다.
다만 내년에 맞이하는 과학기술 전담 부처의 환갑이 축하만 하는 자리가 돼서는 안 된다. 사람의 환갑이 60갑자를 돌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듯, 과학기술 정부 조직도 60주년 성과 자축을 넘어 새로운 도약의 길을 열어가야 한다.
특히 지금 우리나라가 마주한 현실은 과학기술 정책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AI 대전환을 비롯해 저출생·고령화로 인한 인구 절벽, 기후 위기까지 거대한 도전들에 직면해 있다. 이제는 과거의 성공 방식을 넘어서는 새로운 전략이 요구된다. 빠르게 쫓는 추격자를 넘어, 퍼스트 무버로서 앞서 개척해 나가는 변화가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안정된 과학기술 거버넌스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정권의 부침이나 단기적인 성과주의에 휘둘리지 않고, 새로운 60년과 그 이후까지 내다보는 뚝심 있는 연구개발(R&D)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과학기술인이 자부심을 가지고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다가올 미래 60년을 이끌어갈 가장 튼튼한 인프라다.
가난했던 과거를 극복해 낸 지난 60년의 저력을 발판 삼아, 대한민국 과학기술이 다가올 미래 60년을 위한 대계를 다시 쓰는 원년이 되어야 한다. 환갑을 맞은 대한민국의 혁신 엔진이 다시 한번 힘차게 달리길 기대한다.

권건호 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