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9년 인류의 달 착륙을 가능하게 한 아폴로 유도 컴퓨터는 당시 최첨단 기술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수십만배 더 뛰어난 연산 능력을 갖춘 스마트폰을 누구나 손에 들고 다닌다. 컴퓨팅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할 수 있었던 건 트랜지스터를 더 작게 만들고 하나의 칩에 더 많이 집적한 반도체 미세화 덕분이다.
생성형 인공지능(AI) 등장으로 상황이 또 달라지고 있다. AI 연산량이 급증하면서 트랜지스터를 작게 만드는 것만으로는 성능을 높이는 데 한계가 생겼다. 이제 AI 시스템 성능은 개별 칩 연산 능력뿐 아니라 칩과 메모리 사이에서 데이터를 얼마나 빠르고 효율적으로 주고받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메모리 대역폭과 전력 소모, 발열 문제가 AI 성능 향상의 주요 걸림돌로 떠오른 이유다.
AI 시대 반도체 혁신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업계에서는 첨단 패키징을 주목한다. 여러 칩을 하나의 시스템처럼 긴밀하게 연결하고 효율적으로 통합하는 역량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 3차원 집적회로(3D IC) 기술이 있다. AI 연산에 필요한 높은 연산 집적도, 넓은 메모리 대역폭, 낮은 전력 소모, 효율적인 열 관리를 실현할 해법이다.
단순 구조 개발뿐만 아니라 이를 대규모로 양산할 수 있어야 한다. 3D IC 기술이 연구개발을 넘어 본격적인 생산 단계로 접어들면서 업계 관심도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에서 '어떻게 안정적이고 경제적으로 생산할 것인가'로 옮겨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고종횡비 실리콘관통전극(TSV) 식각과 보이드(공극) 없는 TSV 충진, 유전체 증착, 다이 간 갭 필, 플라즈마 다이싱 등 각 공정의 정밀도와 안정성이 수율과 생산성, 신뢰성을 좌우한다. 첨단 패키징 성패는 이러한 공정을 얼마나 균일하고 안정적으로 양산에 적용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TSV는 적층한 반도체 소자를 수직으로 연결, 집적도를 높이고 데이터 이동 거리를 줄일 수 있어 3D 집적의 핵심 역할을 한다. 그러나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증착과 식각, 검사, 공정 통합 난도도 높아진다. 3D IC를 실제 양산하려면 각 공정을 정밀하게 제어하고 안정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공정 기술이 뒷받침돼야 한다.
램리서치가 신디온 플랫폼을 차세대 3D IC 구조에 필요한 고종횡비 TSV 공정을 지원하며, 세이버 3D로 TSV 내부를 빈틈없이 정밀하게 채우는 전기화학 증착 기술을 제공하는 배경이다. 또 첨단 칩렛 통합과 3D 적층에서는 플라즈마 다이싱과 다이 간 갭 필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어 벡터 테오스 3D 플랫폼으로 대응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가 빠르게 확대되면서 대량의 데이터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전송하는 일도 중요해졌다. 공동패키징광학(CPO)은 광학 부품과 전자 부품을 하나의 패키지 안에 가깝게 배치해 대역폭을 높이고 전력 효율을 개선할 수 있다. 그러나 광소자와 전자 집적회로, 광학 소재, 첨단 패키징 구조를 하나로 결합하려면 새로운 제조 기술이 필요하다.
이처럼 첨단 패키징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반도체를 개발하고 생산하는 방식 전반의 혁신도 필요하다. 램리서치는 디지털 트윈과 공정 시뮬레이션, 데이터 기반 공정 제어를 활용해 공정 개발 기간을 줄이고 제조 조건을 최적화하며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 AI 칩이 차세대 AI 칩을 생산할 장비와 제조 공정의 발전을 돕는 선순환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자동화와 지능화도 이러한 제조 혁신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축이다. 또 AI 패키지가 커지면서 생산 방식이 원형 웨이퍼에서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 패널로 확대되고 있다.
첨단 패키징의 미래는 어느 한 기업의 힘만으로 만들어갈 수 없다. 램리서치가 최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패널 혁신 센터를 연 배경이다. 이곳은 단순한 연구시설을 넘어 고객과 생태계 파트너가 차세대 패널 레벨 패키징(PLP) 공정을 함께 개발하고 검증하며, 양산 가능성을 평가하는 협업 거점이다. 초기 단계부터 고객 및 파트너와 공정을 공동 개발하고 검증, 기술 개선과 양산 전환에 필요한 시간을 단축하고 있다.
AI 반도체의 경쟁력은 더 이상 트랜지스터를 얼마나 작게 만드느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칩을 얼마나 정밀하게 연결하고 안정적으로 제조하며, 이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양산하느냐가 미래의 주도권을 가를 것이다. 첨단 패키징은 AI 혁신을 가능성에서 현실로 전환하는 핵심 기반이다.
치핑 리 램리서치 첨단 패키징 전략 마케팅 매니징 디렉터 cheeping.lee@lamresea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