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 한국 패션은 스트리트웨어와 아방가르드 디자인, 럭셔리 패션, 정교한 테일러링 전통을 바탕으로 세계 패션 산업의 흐름을 이끌고 있다. 해외 디자이너들 역시 한국 패션을 꾸준히 주목하며, 전통과 현대적인 스타일을 결합하는 데 한국 패션을 중요한 참고 대상으로 삼고 있다.
최근 막을 내린 모스크바 패션위크 참가 디자이너들도 마찬가지다. 독립 패션 브랜드들이 참여하는 이번 국제 패션 행사에는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 북미와 중남미에서 350명 이상의 디자이너가 참가했다. 신 브랜드의 창립자 안토니오 신은 서울에서 컬렉션을 기획하고 제작하며 한국 패션 산업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다. 그는 “한국의 다채로운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오버사이즈 디자인과 스트리트웨어부터 아방가르드 패션, 거대한 K팝 문화, 두터운 하이엔드 럭셔리 시장까지 서로 다른 스타일과 문화가 공존하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안토니오 신은 지난 30년간 클래식 남성복 테일러링을 재해석해 온 한국 디자이너 김서룡을 자신의 스승으로 꼽았다. 남성복에서 출발한 신 브랜드에 김서룡은 디자이너로서 중요한 본보기가 됐다.
튀르키예 디자이너 괴칸 야바쉬가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한국 사극이었다. 안개에 싸인 산과 숲, 자연경관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오래된 건축물의 모습에 매료된 것이다. 그는 이번 모스크바 패션위크에서 내장산과 1980년대 이스탄불, 서울의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션 '아머드 사일런스'를 선보였다.
현재는 디자이너로서 한국 패션을 꾸준히 주목하고 있다. 특히 한국 디자이너들이 실루엣과 비율, 레이어링을 실험하며 전통적인 요소를 일상복에 자연스럽게 접목하는 방식을 높이 평가한다. 한국 소비자들 역시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한국 소비자들은 자신만의 스타일이 뚜렷하고, 독창성과 창의성, 세심한 디테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느낍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칸야바스의 디자인 언어도 한국의 패션 애호가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고 말했다.
괴칸 야바쉬는 한국과 튀르키예가 풍부한 문화적 역사를 공유하고 있으며, 양국 모두 전통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젊은 디자이너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공통점에 주목한다. 그 역시 전통적인 제작 기법과 현대적인 재단 방식을 결합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컬렉션에서는 튀르키예 전통 수공 자수 기법으로 한국의 한옥을 표현하기도 했다.

두 디자이너에게 한국에 대한 관심은 이미 단순한 영감의 차원을 넘어섰다. 신 브랜드는 2024년부터 한국에 법인과 생산 기반을 두고 있으며, 최근에는 현대백화점과 협업을 시작해 2026년 9월 말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괴칸 야바쉬 역시 향후 자신의 컬렉션을 한국에서 선보이기를 희망하고 있다. 한국의 패션업계 관계자들과 교류하고, 장기적인 창작 및 비즈니스 협력 관계를 구축할 유통 파트너를 찾는 것도 그의 목표다.
한편,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러시아 브랜드 수로바야 역시 이번 모스크바 패션위크에 참가했다. 이 브랜드는 최근 서울에서 패션쇼를 개최했다. 브랜드 디자이너 라리사 수로바는 지난 3월 바이어 상담회를 시작으로 런웨이 쇼까지 이어진 한국에서의 경험을 통해 한국 고객들이 천연 소재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 컬렉션은 한국 고객들에게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 역시 의상에 동양 여러 나라의 요소를 활용하기 때문입니다”고 말했다.
수로바야는 이번 모스크바 패션위크에서 'Dragon's Song' 컬렉션을 선보였다. 용을 원초적인 힘과 고대의 지혜를 상징하는 존재로 표현한 이번 컬렉션에서는 스팽글 장식의 케이프와 반투명하게 빛나는 소재가 주요 요소로 등장했다.
이원지 기자 news21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