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묵현 화인로보틱스 대표 “3조원 피지컬 AI 예산, 사람과 데이터 없으면 쇳덩이”

“로봇 다룰 사람도, 가르칠 데이터도 없다” 휴머노이드 시대 한국의 두 빈칸

김묵현 화인로보틱스 대표. 사진=화인로보틱스
김묵현 화인로보틱스 대표. 사진=화인로보틱스

테이블 위에 로봇의 팔과 다리, 허리가 따로 놓여 있었다. 키 130㎝짜리 휴머노이드 한 대를 부위별로 해체해 놓은 것이다. 엔지니어가 다리 관절을 몸통에 끼우고 배선을 연결한 뒤 관절 영점을 맞추자, 조금 전까지 부품 더미였던 로봇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걸음을 옮겼다. 최근 찾은 애지봇(AGIBOT)의 공식 대리점 및 A/S Center를 운영하는 화인로보틱스 사업장의 풍경이다.

이 로봇은 화인로보틱스가 학교, 연구기관, 기업에 공급하는 교육 및 실습용 휴머노이드 'X2 EDU'다. 중국 휴머노이드 기업 애지봇이 지난 7월 세계인공지능대회에서 처음 공개한 모델로, 실제 양산 중인 X2의 파생 제품이다. 완제품이 아니라 해체된 상태로 납품되며, 언제든 조립과 분해를 할 수 있다. 학생이 직접 조립하고 튜닝한 뒤 소프트웨어까지 개발하도록 설계됐다.

김묵현 화인로보틱스 대표는 “지금 한국에 부족한 건 로봇이 아니다”라며 “로봇을 이해하고 다룰 사람과 로봇에게 일을 가르칠 데이터, 이 두 가지가 비어 있다”고 말했다.

■ 예산은 생겼지만 빈칸은 그대로

휴머노이드를 둘러싼 정부의 움직임은 빨라지고 있다. 정부는 2027년부터 2030년까지 휴머노이드 생태계 육성에 2조3천억 원, 자율제조와 물류, 돌봄, 국방 등 8대 분야 피지컬 AI 실증에 2조8천억 원을 투입하는 방안을 내놨다. 대학과 마이스터고에는 로봇 관련 학과와 실습실이 잇따라 들어서고 있다.

김 대표는 이 흐름을 반기면서도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그는 “예산이 하드웨어 구매에만 몰리면 3년 뒤엔 창고에 쌓인 로봇만 남는다”며 “로봇은 구매하는 순간이 아니라 일을 배우는 순간부터 가치가 생기는데, 그걸 가능하게 하는 건 결국 '사람'과 '데이터'라고 강조했다. 3조원 넘는 예산도 이 두 빈칸을 채우지 못하면 쇳덩이에 그칠 수 있다는 얘기다.

화인스텍과 화인로보틱스의 공동 대표인 김 대표에게 로봇 사업은 17년간 쌓아온 머신비전 경험의 자연스러운 확장이다. 산업 자동화에 필요한 머신비전 솔루션을 공급하며 기계에 '보는 능력'을 더해온 그는, 이제 로봇을 통해 인식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자동화를 구현하고자 한다. 김 대표는 “카메라로 세상을 보던 기계가 이제 손으로 세상을 다루기 시작했다”며 기계가 감각을 얻어가는 과정을 오래 지켜본 경험이 로봇 사업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 첫 번째 빈칸, 로봇을 다룰 사람

김 대표가 꼽은 첫 번째 빈칸은 인력이다. 휴머노이드는 수십 개 관절과 센서, 제어 소프트웨어가 맞물려 움직이는 복합 기계다. 공장과 연구실에 휴머노이드가 늘어날수록 이를 조립하고 정비하고 개발할 사람이 필요하지만 현재 교육 현장의 교보재는 대부분 바퀴형 로봇이나 로봇팔 단품, 소형 키트 수준이다. 산업 현장의 휴머노이드와는 구조부터 다르다. 반대로 연구용 완제품은 성능이 뛰어나지만 내부를 열어볼 수 없고 수리를 하려면 해외 제조사로 발송을 해야 한다.

김 대표는 이 간극을 '정답지'와 '문제집'에 빗댔다. 그는 “완제품은 정답지와 같아서 결과는 보여주지만 풀이 과정은 알려주지 않는다”며 “분해된 로봇은 문제집이다. 관절 하나를 조립하고 영점을 맞추는 과정에서 학생은 로봇이 왜 넘어지고 왜 버티는지를 몸으로 배운다”고 설명했다.

X2 EDU는 29개 관절을 갖췄고 무게는 35㎏으로 학생 두 명이 다룰 수 있다. 교육 과정은 부품 이해에서 시작해 조립과 배선, 캘리브레이션, 보행 튜닝, ROS2 기반 소프트웨어 개발, 캡스톤 프로젝트를 거쳐 체화 AI 연구까지 7단계로 이어진다.

장비만으로는 수업이 굴러가지 않는다는 점도 김 대표가 강조한 대목이다. 그는 “로봇 한 대보다 로봇을 가르칠 수 있는 교사 한 명이 더 귀하다”며 “장비 납품보다 교원 연수에 더 공을 들이고, 설치와 사후 정비, 예비 부품 국내 재고까지 직접 맡는 이유”라고 말했다. 화인로보틱스는 애지봇의 공식 파트너로 국내에서 유일하게 애지봇의 공식 A/S Center를 운영 중이며 공식 자격증을 최상급 엔지니어가 상주하고 있다.

■ 두 번째 빈칸, 로봇을 가르칠 데이터

두 번째 빈칸은 데이터다. 최근 휴머노이드는 사람이 일일이 동작을 프로그래밍하는 대신, 사람의 시범을 보고 따라 배우는 모방학습과 시행착오를 통해 익히는 강화학습으로 일을 배운다. 사람이 원격조작 장비로 물건을 집고 옮기는 시범을 보이면, 그 동작이 데이터로 쌓여 로봇의 학습 재료가 되는 방식이다. 결국 얼마나 많은 양질의 데이터를 확보하느냐가 로봇의 실력을 가른다.

김 대표는 “데이터 수집 장비는 사는 것보다 돌리는 게 훨씬 어렵다”고 말했다. 장비를 세팅하고, 원격조작을 할 인력을 교육하고, 수집한 데이터를 학습에 쓸 수 있는 형태로 관리하는 일까지 모두 현장의 몫이기 때문이다. 화인로보틱스는 기관이 장비를 받은 첫날부터 데이터를 쌓을 수 있도록 이 과정을 함께 맡고 있다.

김 대표는 두 빈칸이 따로 떨어진 문제가 아니라고 봤다. X2 EDU 교육 과정의 마지막 단계가 체화 AI 연구로 이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로봇을 조립하며 구조를 익힌 학생이 결국 로봇에게 일을 가르치는 데이터를 다루는 연구자가 된다”며 “사람을 키우는 일과 데이터를 키우는 일은 같은 현장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 “가장 가까이에서 뜯어본 사람이 다음 로봇을 만든다”

중국산 로봇을 국내 교육 현장에 들여오는 데 대한 시선도 있다. 김 대표는 중국의 앞선 실력을 인정하는 데서 답을 찾았다. 그는 “중국 휴머노이드는 이미 생산량과 양산 경험에서 앞서 있다”며 “그 실체를 외면하기보다 직접 뜯어보고 이해하는 것이 한국 인재에게 더 큰 공부가 된다. 어디가 강하고 어디가 약한지를 가장 정확히 아는 사람이 결국 다음 로봇을 만든다”고 말했다

정부 정책에 대한 제언도 내놨다. 김 대표는 “휴머노이드 예산은 로봇을 사는 데 그치지 않고, 로봇을 다룰 사람을 키우는 교육과 로봇을 가르칠 데이터를 만드는 현장에 같은 무게로 배분돼야 한다”며 “지금 그 균형을 잡지 못하면 몇 년 뒤 로봇은 있는데 쓸 사람이 없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묵현 화인로보틱스 대표. 사진=화인로보틱스
김묵현 화인로보틱스 대표. 사진=화인로보틱스

화인로보틱스는 2025년도 하반기에 설립돼 2026년도 연 매출액 100억 달성을 바라보고 있다. 교육용 휴머노이드 뿐만 아니라 로봇 핸드와 그리퍼, 모션캡쳐, 협동로봇, 산업 자동화 솔루션을 공급하고 있다.

회사는 향후 3년 내 국내 Physical AI 도입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단기적으로 엔지니어링 역량을 집중 강화하고, 빠르게 진화하는 핵심 기술을 고객사의 현장에 실질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기술 경쟁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기술력과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Physical AI 도입을 선도하며, 고객이 Physical AI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찾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구상이다.

김 대표는 “로봇을 몇 대 팔았느냐보다, 우리가 키운 사람과 데이터가 몇 곳의 현장을 바꿨느냐로 평가받고 싶다”며 “휴머노이드는 사는 게 아니라 길러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원지 기자 news21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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