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동산과 주식, 가상자산 등에 투자해 10년 사이 90억원이 넘는 재산을 모은 40대 직장인의 사연이 인터넷에서 화제다. 경제적인 여유를 얻었지만 정작 고민을 나눌 사람이 없어 고립감을 느낀다는 이야기다.
28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삼성전자 소속으로 표시된 이용자 A씨가 '자산 90억인데 얘기할 사람이 한 명도 없음'이라는 제목으로 게시물을 작성했다.
A씨는 자신이 보유한 재산이 약 90억원이며, 빚을 제외한 순자산도 80억원 후반대에 달한다고 밝혔다. 글과 함께 공개한 계좌 화면에는 91억8755만6942원이라는 금액이 표시돼 있었다.
그는 이 정도 재산을 확보하면 마음 놓고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여러 걱정에 시달린다고 털어놨다. 자신의 상황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상대가 마땅치 않아 온라인에 글을 남기게 됐다는 설명이다.
기혼자인 A씨는 40대 직장인으로, 지난 10년 동안 부동산과 주식, 가상자산 등 여러 투자처에 자금을 투입해 왔다. 한동안 재산 규모에 큰 변화가 없었지만, 최근 몇 차례 내린 투자 결정이 맞아떨어지면서 보유 자산이 빠르게 증가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경제적 성공이 모든 고민을 해결해 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심리적 부담이 생겼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A씨는 가장 버거운 점으로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고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꼽았다. 직장 동료에게 재산 규모를 공개하기는 어렵고,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면 과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고민을 털어놓더라도 이미 충분히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의 배부른 소리라는 반응이 돌아올 수 있어 입을 다물게 된다고 했다.
그는 재산이 늘면서 일상에서도 달라진 점을 체감한다고 설명했다. 식당에서 메뉴를 고를 때 가격을 따지지 않거나 은행에서 별도 공간으로 안내받는 등 과거에는 겪어보지 못한 일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다만 이런 경험이 마냥 즐겁기보다는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놓인 듯한 낯선 기분을 안겨준다고 전했다.
불안의 성격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돈이 부족해질 가능성을 걱정했다면, 지금은 어렵게 모은 재산을 한순간에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생겼다는 설명이다. 재산이 늘어도 걱정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고민의 내용만 바뀌었다는 취지다.
A씨는 돈이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통념에 대해서도 복합적인 생각을 드러냈다. 생계나 생활비에 대한 부담은 크게 줄었지만, 그것만으로 마음의 안정까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회사를 떠나는 문제 역시 쉽게 결론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는 매일 퇴사를 떠올리면서도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고 밝혔다. 업무에 대한 애착 때문이라기보다는 직장을 그만둔 뒤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정의해야 할지 막막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상당한 재산을 모았음에도 조기 은퇴를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를 밝힌 셈이다.
게시물을 본 이용자들은 다양한 의견을 내놨다. 한 누리꾼은 경제적으로 풍족해도 심리적으로는 여유가 없어 보인다며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보라고 조언했다.
또 다른 이용자는 자산 규모보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삶을 원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적은 재산으로도 직장을 그만두고 만족스럽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훨씬 많은 돈을 보유하고도 은퇴를 결심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 설명이다.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는 댓글도 나왔다. 자신 역시 100억원가량의 재산을 갖고 있지만 부모나 친구, 직장 동료, 형제자매에게 관련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이용자는 배우자와는 자주 의견을 나눈다고 전했다.
주변 사람에게 재산을 공개할 때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우려하는 반응도 있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질투나 시기로 상처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지인들과 금전 문제를 공유하기보다 가족과의 관계에서 만족을 찾는 편이 낫다는 의견이다.
이번 사연은 상당한 부를 축적하더라도 정서적인 안정이나 인간관계에서의 만족까지 저절로 따라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며 온라인에서 여러 논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원지 기자 news21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