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가 나면 대한민국에는 익숙한 장면이 반복된다. 실무자가 조사를 받고, 중간 관리자가 고개를 숙이고, 기관장이 옷을 벗는다. 여론이 가라앉으면 막이 내린다. 한 때 이 문화는 아랫사람의 잘못까지 윗사람이 짊어지며 조직의 기강을 세우고 책임의 무게를 가르쳤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달라졌다. 옷을 벗는 사람은 있는데, 정작 무엇이 잘못이었는지는 밝혀지지 않는다. 책임지는 장면만 있고 책임은 사라졌다. 무안공항 참사 앞에서 우리는 활주로와 둔덕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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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결정한 사람이 기억되는 나라로2026-07-21 16:00 -
〈22〉정권교체를 넘어 국가 운영체제의 업그레이드로사진 한 장이 마음에 남았다. 지난 6월 29일 청와대 영빈관, 대통령이 두 기업 총수 앞에서 깊이 허리를 숙였다. 언론은 이를 파격의 예우라 불렀다. 그러나 필자의 눈에는 다른 장면이 겹쳐 보였다. 정권마다 반복된 국가 권력과 자본의 관계였다. 대한민국이라는 앨범에 쉽게 넘기지 못할 사진 한 장이 또 추가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남에 대규모 반도체 팹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됐다. 기업의 투자 계획을 정부가 먼저 발표했고, 이후 기업 공시가
2026-07-07 16:00 -
〈21〉기승전결(起承轉結)이 안 되는 나라세계는 전쟁 중이다. 보이는 전쟁은 중동과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전쟁은 국가의 미래를 놓고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강국들은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하며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에너지 기술의 주도권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우리 역시 소버린 AI 구현과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을 선언하며 이 거대한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거대한 포부 뒤에는 기이한 엇박자가 존재
2026-06-23 16:00 -
〈20〉정치가 너무 많은 것을 결정하는 나라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끝났다. 선거 기간 동안 언론의 1면은 정치가 차지했고 방송의 메인 뉴스 역시 정치 이슈로 가득 찼다. 누가 이길 것인가, 어느 진영이 승리할 것인가가 온 나라의 최대 관심사가 되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는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가장 중요한 절차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지금 우리는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대한민국은 정치가 이토록 중요한 나라가 되었을까. 정치가 중요하지 않은 나라는 없다. 어느 나라든 선거는
2026-06-09 16:00 -
〈19〉금융은 어떻게 혁신국가를 만드는가최근 국민성장펀드가 출시 10분 만에 완판됐다는 뉴스를 접했다. 코스피 시장의 훈풍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반가웠던 것은 자본의 물길이 미래 산업으로 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동시에 한 가지 묵직한 질문이 머리를 스쳤다. 과연 우리 금융은 이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고 있을까. 서구 자본주의는 지난 300년에 걸쳐 금융과 함께 진화해왔다. 처음에는 땅과 금 같은 눈에 보이는 유형 자산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산업혁명들을 거치며 금융
2026-05-26 16:00 -
〈18〉알고리즘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흔드는가2016년 미국 대선 직후, 옥스퍼드 사전은 그해의 단어로 '탈진실(Post-Truth)'을 선정했다. 객관적 사실보다 감정과 신념이 여론을 지배하는 시대가 왔다는 선언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탈진실의 가장 첨예한 실험장이 되었다. 선거철마다 디지털 광장은 들끓는다. 유튜브마다 폭로가 넘쳐나고, 커뮤니티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로 뒤덮인다. 이 혼돈은 우연이 아니다. 정교하게 설계된 시스템의 산물이다. 문제는 그 설계자가
2026-05-12 16:00 -
〈17〉대한민국은 왜 '공공 기업가'를 만들지 못하는가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밀어붙였을 때 가장 결정적인 자원은 자본도 기술도 아니었다. '판을 설계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당시 국가 재건의 현장에는 기업가적 감각으로 방향을 설계한 실무형 기획자들이 있었다. 관료이되 관료주의에 머물지 않고, 사명과 현장 감
2026-04-28 16:00 -
〈16〉'디지털 광장의 유령들'과 권력의 공백고대 로마의 광장, 포룸(Forum)에서 가장 무서운 형벌은 사형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록에서 이름을 지우고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기록말살형(Damnatio Memoriae)'이었다. 이는 국가의 반역자나 수치스러운 인물에게 내려지는 가장 불명예스러운 형벌이었다. 단
2026-04-14 16:00 -
〈15〉'지능형 연대'로, 지방의 내일을 묻다지방선거의 계절이다. 거리는 각양각색의 현수막으로 뒤덮였고, 후보들은 '지역 경제 살리기'와 '천지개벽'을 약속하며 허리를 숙인다. 하지만 그 화려한 약속 뒤편에서 우리 지방의 시계는 '소멸'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인구 유출과 고령화로 지방은 유령도시가
2026-03-31 16:00 -
〈14〉AI 시대, 국민의 정의를 다시 묻다대한민국은 오랫동안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를 국가적 과제로 삼아왔다. 그러나 이제 우리 앞에는 훨씬 근본적인 질문이 놓여 있다. 앞으로 누가 대한민국을 움직일 것인가. 첫 번째 현실은 인구 절벽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생산연령인구(15~64세)는 2020년을 정점으로
2026-03-17 16:00 -
〈13〉불평등의 역습:왜 국가 재설계인가코스피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며 자본시장은 축제의 불꽃놀이로 가득하다. 그러나 화려한 지수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 축제에 초대받지 못한 이들의 침묵이 있다. 지표가 증명하는 번영과 개인이 체감하는 빈곤 사이의 괴리, 즉 '디커플링(Decoupling)'은 이제 한국 사
2026-03-03 16:00 -
〈12〉거버넌스 리빌딩, 국가 시스템 재설계의 골든타임대한민국 산업화의 역사는 처절한 자기 파괴와 혁신의 기록이다.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실존적 위기 앞에서 우리 기업들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미래를 향한 선제적 결단이었든 생존을 위한 고육지책이었든, 그 고통을 감내한 결과 오늘날의 글로벌
2026-02-03 16:00 -
〈11〉대한민국의 사각지대, 시스템 정치 부재대한민국 사회에서 예측 가능성이 가장 낮은 분야를 꼽으라면 단연 정치권의 인사다.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은 명확한 '진입의 규칙'을 갖고 있다. 대학 진학이나 기업 취업, 공무원 임용에 이르기까지 무엇을 준비하고 어떤 역량을 갖춰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비교
2026-01-20 16:00 -
〈10〉기술패권 시대, '넥스트 거버넌스'로 리셋하라대한민국의 현대사는 기적의 역사다. 1960년대 1인당 국민소득 80달러의 최빈국이 반세기 만에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도약했다. 이 믿기지 않는 압축 성장의 심장에는 언제나 '과학기술'이 있었다. 정치적 격변기에도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기술 입국(立國)'이라
2026-01-06 16:00 -
〈9〉정권교체 인사논란 '한국판 플럼북'이 답이다기업인 시절 비상임 이사로 활동 중에 기관장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일이 있었다. 이유인즉슨, 정권이 바뀌자 나가라는 압박을 받았음에도 버티다 감사원 감사가 시작되자 결국 직을 내려놓고 떠난 것이다. 또 한 번은 대통령 직속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던 중 자발적 사임을
2025-12-23 1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