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터넷 2010]좌담회-전문가 5인, 개방을 말하다

2010년 한국 인터넷 산업의 키워드는 ‘개방’이다.

포문은 애플의 아이폰이 열었다. 누구나 참여해 콘텐츠 생산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앱스토어가 소개되고 여기에서 돈을 버는 스타 개발자가 나오면서 앱스토어 생태계는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았다. 이어 구글 안드로이드 마켓, 페이스북 앱스토어 등 글로벌 기업이 플랫폼을 개발하고 국내 기업과 개발자까지 포용하면서 내수 시장에 머물렀던 한국 인터넷 산업을 자성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SK텔레콤, NHN 등 그간 폐쇄적이라고 비판받았던 국내 기업은 외부 개발자·기업에 자신들의 플랫폼을 열고 글로벌 환경 변화에 맞대응하기 시작했다.

전자신문은 인터넷 산업 곳곳에서 개방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불거져 나오지만 아직까지 개방 논의가 제대로 펼쳐지지 않았음에 주목했다. 비즈니스 전략으로서 개방이 생태계 형성에 주는 의미, 개방을 저해하는 요소를 토론함으로써 개방을 고민하는 기업·개발자에게 시사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토론 참석자들은 폐쇄된 한국의 인터넷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했거나 인터넷 개방 생태계에 참여하고 있는 전문가들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글로벌 경쟁 시대에서 개방의 의의, 이유, 가능성 등을 놓고 심도 있는 의견을 나눴다.

◆참석자(가나다순)

△김기창 고려대 법과대학원 교수

△류한석 기술문화연구소장

△양석원 코업 대표

△윤석찬 한국모질라커뮤니티 리더

△한동호 안드로이드사이드 운영자

사회:조인혜 전자신문 미래기술연구센터(ETRC) 팀장.

◇사회(조인혜 팀장)=인터넷 산업에서 ‘개방’이 화두다. 애플과 구글이 서로 ‘폐쇄다, 개방이다’며 갑론을박하고 있고, 한국 인터넷 기업의 폐쇄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이렇듯 개방에 대한 목소리가 엇갈리고 있는 상황에서 먼저 ‘개방’이 무엇인지 이야기해보자.

◇한동호 안드로이드사이드 운영자=모든 것을 다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개방할 수 있는 것을 개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자신이 가진 데이터베이스(DB)를 개발자가 사용해 새로운 것으로 만들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개방이다.

◇김기창 고려대 법학과 교수=개방으로 이용자는 더 많은 선택의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이것은 곧 소비자에게 힘이 생긴 것을 의미하고 권력의 재분배 상황까지 논할 수 있게 된다.

◇윤석찬 모질라커뮤니티 리더=산업 관점에서 개방은 비즈니스 프레임의 하나로 독점에 대한 반작용으로 볼 수 있다. 오픈소스의 경우도 소프트웨어 기업이 특별한 철학을 갖고 탄생했다기보다 마이크로소프트(MS)를 견제하기 위한 전략으로 선택한 것이다. 이 개방의 핵심은 상생이나 생태계로 표현할 수 있다.

◇양석원 코업 대표=산업에서 다양성이 존재하고 사용자는 선택의 자유가 있는 것이 개방이다. 이를 위해서는 개방된 기술, 정보의 개방이 필요하다. 개방된 기술로는 오픈소스와 서로 다른 기술이 소통할 수 있는 표준이 있다. 정보 역시 개방하면 여기에 살이 붙어 더 좋은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류한석 기술문화연구소장=개방이라는 표현은 가치 중립적이며 개방은 절대 선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개방과 폐쇄가 균형있게 존재해야 한다는 점이다. 페이스북·애플·구글의 사례만 봐도 개방과 폐쇄가 비즈니스 툴로 서로 각성하고 경쟁한다. 한국 사회에 개방성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다양성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사회=최근 앱 생태계를 비롯해 해외의 개방 사례가 소개되는데 실제로 국내외에서 비즈니스적으로 유의미한 성과들이 있나.

◇한동호=실제로 안드로이드 마켓을 기반으로 생존하는 기업과 개발자가 상당히 많다. 수익을 얻는 형태도 앱을 판매하는 것부터 SI사업을 병행하는 것까지 다양하다. 개방된 플랫폼은 기회를 많이 줬고 시장은 앞으로 계속 커질 것 같다.

◇윤석찬=이베이 같은 경우 상품이 나열되는 리스팅 중 절반 이상이 오픈 API에서 올라오는 것이다.

◇양석원=블로그가 처음 도입될 당시 개방된 표준 기술을 산업의 주체들이 같이 접하면서 갖게 된 장점이 많다. 블로그에 생소하던 기업들이 RSS라는 기술을 처음엔 흉내만 내다가 이후 다양한 시도로 서비스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좋은 사례다.

◇김기창=최근에는 알라딘 서점 같은 경우가 개방 정책을 매우 잘 이용한다고 볼 수 있다. API를 공개해 책에 대한 정보를 서드파티(외부 개발자)가 가져가서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사회=말씀해주신 것과 같이 국내에서도 여러 분야에서 개방을 위한 작은 시도들이 있었던 점은 유의미하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개방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데 어떤 이유인가.

◇윤석찬=시장의 문제다. 우리나라는 독점이 쉽게 허용되는 시장이었다. 생태계를 만드는 코스트보다는 직접 하는 코스트가 싸서 개방이 늦었고 토종 기업을 살리기 위해서 글로벌 기업을 견제하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못 갖췄다.

◇류한석=국내 전체적인 산업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인터넷 산업뿐만 아니라 산업 전체에서 상생을 할 수 있는 토대가 약했다. 하지만 아이폰 도입 등이 부른 여러 변화로 개방은 하나의 도구로서 한국 사회에서 사용해야 할 상황인 것은 확실하다.

◇김기창=국내 규제 주체들이 국내 산업보호라는 잘못된 목표 때문에 많은 타격을 가해왔다. 폐쇄주의적인 보호주의로 시장이 큰 것도 아니다. 국내 규제가 기업이 전 세계를 향할 수 있는 마인드를 가지는 데 역행했다.

◇한동호=개방은 기업의 무기로 그 무기를 써서 뭔가 얻을 수 있다면 했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 국내 인터넷 기업의 기반이 마련되지 않아 구글, 야후 등 외국 기업에 밀려서 위험해졌을 것이라 판단해 열지 않았다. 이제는 무기로 개방을 선택할 때가 온 것 같다.

◇사회=우리 정부는 게임 심의와 같이 인터넷 산업 규제가 많은 편이다. 규제가 개방성과 직접 맞닿지는 않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을 때 절차상 문제가 되거나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아 개방을 질곡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윤석찬=규제는 개방성을 저해한다기보다는 혁신을 저해한다. 개방을 함으로써 선택과 참여가 생겨 혁신을 했는데 이를 기존의 틀에 맞춰서 제어를 하게 되면 혁신이 발현되지 않는다. 비즈니스로 성공한 후 규제해도 충분하다. 산업의 싹이 트려고 할 때 밟으려고 하면 문제가 된다.

◇김기창=과거의 법·제도가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형사처벌, 행정제재를 가함으로써 개방의 여러 기회를 막는다. 대표적인 것이 저작권 제도라고 생각한다. 현행 저작권은 창작자에게 가장 열악한 제도다.

◇사회=개방의 정의부터 개방의 현안 등을 두루 살펴봤다. 마지막으로 개방성을 이루기 위해 꼭 해결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가장 노력해야 할 곳은 어디인지 의견을 말해달라.

◇윤석찬=시장을 이끄는 기업(리딩 플레이어)이 나서야 한다. 개방은 각 기업의 생존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개방으로 생태계를 꾸려 봄으로써 지속가능한 경영을 할 수 있다.

◇류한석=결국 대기업이 변해야 한다. 최근 5년간 국내에서 혁신적인 신규 서비스가 나오지 않았다. 혁신의 도구로 개방이 필요하다. 국가는 글로벌 기업이 한국에서 똑같이 비즈니스를 할 수 있게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으로 한국 인터넷 산업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김기창=개방이나 혁신이 자기 스스로 결심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외부에서의 자극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또 국가의 역할도 축소돼야 할 것이라 본다. 인터넷을 자꾸 의심하고 위험한 물건으로 보는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한동호=공공정보의 개방이 가장 시급하다. 앞서 개방할 수 있는 것을 개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는데 공공정보가 가장 먼저 그럴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개발현장에서 수요가 많지만 이를 활용할 방법이 없다. 공공정보만 개방하더라도 이를 통해 다양한 서비스가 창출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양석원=인터넷을 하나의 공공재로 보는 인식이 필요하다. 특히 공공기관의 경우 개발한 서비스를 자신들의 것으로 묶고 다양하게 활용하지 못하는데 개방성의 철학이 바탕이 된다면 이런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 대기업은 업계 전반을 위해 기술을 내놓고 이를 기반으로 상생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리=

이수운기자 per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