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대한민국 생체인증 핀테크, 뭉쳐야 산다

생체인증 기반 핀테크 기술에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국내 전문 기업도 속속 등장, 국가적 위상도 높아지고 있다. 생체인증 세계 공통 프로토콜 제정을 위해 창립된 FIDO(Fast IDentity Online) 연합회가 실시하는 공식 인증 프로그램에서도 한국 기업 활약이 두드러진다. 7월 말 현재 비밀번호를 치환하는 기준인 UAF(Universal Authentication Framework) 항목을 두 개 이상 통과한 7개 업체 중 5개가 한국 업체다. 전체 항목을 인증 받은 업체 4개 중 3개가 한국 기업이다. 도대체 한국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느냐고 묻는 FIDO 담당자들 농담이 그저 농담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안건준 크루셜텍 대표
안건준 크루셜텍 대표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페이저(Pager), 일명 ‘삐삐’라는 애칭으로 불린 무선 호출기가 한국에 보급되기 시작했을 당시, 전문가들이 예측했던 보급량은 거의 대부분 큰 차이로 빗나갔다. 의사처럼 시급을 다투는 전문직이나 중요 미팅을 놓치면 안 되는 몇몇 비즈니스 종사자 위주로 소량 보급될 것이라던 예측과 달리 삐삐는 초등학생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학생, 연인들 필수품으로 자리잡았다. 숫자를 사용해 의미를 전달하는 기발하고 다양한 약어들이 등장했다. 카페에선 테이블마다 전화기를 비치했으며 공중전화 박스마다 길게 늘어선 줄이 흔한 풍경이던 시절이 있었다.

2000년대 IT 인프라 구축에서도 한국 열정은 한결같았다. ‘빨리빨리’ 국민 정서와 맞물려 모두 ‘스피드’를 외치며 초고속 인터넷 망을 갖추지 못하면 큰일이라도 날 듯이 시스템을 구축해 왔다. 그 결과 지금까지도 세계가 부러워하는 수준의 인터넷 인프라를 갖추었고 이는 갤럭시 시리즈를 위시해 자연스럽게 스마트폰 열풍까지 연결됐다. 해외에 나갔다 귀국한 사람들은 누구나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시원하게 터지는 인터넷 속도에 막힌 체증이 내려간다.

이처럼 최첨단 기술에 열광하고 그것이 곧 문화로 연결되는 한국에서 그 어느 나라보다 발달한 스마트폰 인프라를 바탕으로 다양한 생체인증 기반 인증 솔루션이 등장하고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오랜 기간 생체인증에 투자해온 북유럽 기업도 오히려 우리 기술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하지만 생체인증, 핀테크와 같은 최첨단 기술을 추구하는 우리 기업이 필요 이상으로 경쟁하거나 혼자만 살아남겠다고 경쟁자를 악의적으로 배척하는 행위는 경계해야 한다. 눈앞 이익을 쫓다가 자칫 해외 후발 주자에게 각개격파를 당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거의 비슷한 솔루션인데 접두어만 조금 바뀌는 ‘OO페이’ 솔루션들. 경쟁사회에서 이상할 것 하나 없는 현상이지만 실제로 듣는 이들은 피로감을 느낄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각자 경쟁적인 아이디어로 시장을 선도하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지상과제가 기술을 발전시키는 부분도 부정할 수는 없다. 솔루션이 아무리 좋아도 사용자가 거부하고 외면한다면 결국 모두의 손해다.

함께 모여 각자 아이디어를 나누고 많은 소비자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내용으로 공통 솔루션을 제시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소비자는 쏟아져 나오는 솔루션에 선입견을 갖지 말고 장단점을 냉철히 평가해야 한다.

요컨대 새로운 문화를 이끌 수 있는 신기술을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기업은 서로 뭉쳐야 한다. 서로를 깊이 이해할수록 긍정적인 의미의 경쟁으로 이어져 자신이 발전할 수 있다. 다른 이들을 낮춰 평가함으로써 자신을 높이는 그릇된 판단을 막을 수 있다.

많은 국내 핀테크 기업은 이미 우수한 기술력과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도입단계인 시장 상황에서 혼자 힘으로 세계 최고로 올라서기는 쉽지 않다. 서로 부족한 부문을 보완하고 선의의 경쟁으로 동반성장해 나가는 것이 더 짧은 시간에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세계 소비자로부터 인정받는 기업으로 발전해 나가는 지름길이다.

안건준 크루셜텍 대표 charles@crucialte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