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공시의 출발점은 '탄소배출량'이었다. 특히 한 기업의 직간접 배출량을 넘어 공급망 내 배출량, 소위 스코프3까지도 추산, 공시하는 것이 요구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미 일부 기업들은 해외 바이어 요구에 따라 스코프3 공시를 진행하고 있는데, 협력업체의 탄소배출량은 통제하기도, 측정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그 공시정보의 신빙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ESG 공시 로드맵 초안을 발표하면서 2028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하되 스코프3 공시는 이러한 현실적 어려움을 감안하여 최초 3년간 면제한다고 밝힌 바 있다.
탄소배출량 공시를 준비하기에도 갈 길이 바쁜 우리 기업들에게 또다른 도전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이제 자본시장의 시선은 기후, 탄소를 넘어 '자연자본'으로 확장되고 있다. 자연자본은 생태계가 인간 사회와 경제 활동에 제공하는 모든 자원 및 서비스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자연생태계를 단순히 보전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기업에 필요한 재화로 인식하고 관리해야한다는 개념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26 글로벌 리스크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10년 내 인류가 마주할 심각한 위험으로 '생물다양성 감소와 생태계 시스템 붕괴'를 꼽고 있는데, 이러한 자연자본 리스크는 기후변화 리스크보다 더 근본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특성을 가진다.
비록 전쟁과 경제혼란 속에 ESG라는 단어는 뒷전으로 밀려나는 듯 보이지만, '글로벌 리포팅 이니셔티브(GRI)'는 올해초 생물다양성 표준(GRI 101)의 공식 발효를 선언하였고, 생물다양성 관련 보고서를 발간하는 기업들도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등 자연자본 공시는 이미 개시되었다.
이제 기업들은 탄소배출량만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활동을 함에 있어 생태계 훼손를 최소화하고, 서식지 변화를 모니터링하며, 생태복원조치를 적극적으로 하여야 한다. 기후에너지환경부도 자환환경보전법 시행령 개정을 통하여 민간기업의 자연환경 복원사업 참여를 지원하기로 하면서, 참여기업에게는 탄소흡수량 뿐만 아니라 생물다양성 증진에 기여한 정도를 ESG경영 실적으로 인정해주는 문서를 제공해주는 제도를 마련하였다.
나아가 자연자본 공시는 기업의 브랜드 가치 내지 평판을 유지하는 수단이 아니라 투자를 받기 위한 조건이 되어가고 있다. 최근 개정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텍소노미) 가이드라인에서는 기업활동이 환경목표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정도를 정량적으로 보다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데, 생물다양성 및 자연복원도 핵심목표로 반영되어 있다. 이처럼 새로운 분류체계는 향후 녹색투자, 녹색금융의 중요한 판단기준이 될 것이다.
우리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우선 공급망 전반에 걸쳐서 기업활동이 자연에 의존하는 정도를 파악해야 한다. 또한 자연자본 관련 재무정보 공시(TNFD)가 제시하는 방법론인 리프(Locate Evaluate Assess Prepare, LEAP)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기업활동에 내재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활동이 자연과 연결되는 지점을 식별하고, 리스크를 평가하여야 한다. 무엇보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자연자본 이슈를 환경 관련 부서의 업무를 한정하지 않고, 기업경영진부터 직원에 이르기까지 재무리스크와 동등한 수준에서 자연자본 리스크를 모니터링하고 관리하여야 한다.
당장 자연자본 공시는 기업에게 엄청난 부담이다. 그러나 기업도 자연을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자연은 더 이상 공짜가 아니다. 인공지능(AI) 도입 등 대전환의 시대 속에서도 자연자본은 결코 우리 기업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이슈이다. 자연자본은 기업의 생존 문제일 뿐만 아니라 머잖아 기업의 경쟁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헌 법무법인 원 ESG센터장·변호사 jhoh@onelawpartner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