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A 칼럼] 확대되는 벤처투자재원에 대한 새로운 사용법 : 인내자본 확충

[SBA 칼럼] 확대되는 벤처투자재원에 대한 새로운 사용법 : 인내자본 확충

신중경 세종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교수

필자는 초기기업가들이 투자받기가 힘들어, 기업을 성장시키지 못한다는 불평을 자주 듣는다. 또한 투자재원이 특정 기업이나 특정 산업으로만 쏠려 가기에, 자신들이 소외되고 있다는 항변도 듣는다. 맞는 말이다. 현재 이 업계에서는 ‘Series A Crush’라고 해서 창업초기 투자유치를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따라서,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그래서 필요하다는 논리로 자연히 이어지게 되고, 이 논리는 대다수의 초기기업가들과 벤처 전문가들의 공감을 얻으며 투자재원 확대라는 정책안으로 성장하게 된다. 정치인들은 명분과 실리를 전부 챙기고, 인지도 향상에 도움이 되면서, 비판의 부담이 적은 정책 아이디어이므로 강하게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필자도 한때는 초기 기업 투자재원 확대에 긍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고, 구체적인 방안을 고민했던 사람이기에 반겼던 정책내용이다. 그런데 며칠 전 벤처투자기관 및 벤처 전문가 몇 분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초기 기업 투자재원 확대를 무작정 환호하기에는 어렵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 분들은 과잉 유동성 공급으로 인해 경쟁의 격화, 좀비기업화, 회수시장 경색, 투자자 철수로 이어지는 벤처생태계의 불건전한 사이클 강화를 걱정하고 있었다. 하필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표방하면서, 초기기업 육성을 위한 투자재원을 많이 조성했다. 성장사다리펀드, 미래창조펀드 등 다수의 창업펀드들이 만들어지면서, 투자재원이 확충되었다. 그 이전에는 앤젤투자매칭펀드, 신성장동력투자펀드, 모태펀드 등도 조성되었다. 그렇기에 추가적인 유동성 공급은 시장과잉이라고 판단하는 전문가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 분들은 벤처버블 붕괴라는 뼈아픈 경험을 재현해서는 안 된다고 보기에 투자재원 확대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여러 가지 후폭풍이 무서워 공개적으로 말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같은 시기에, 같은 상황을 놓고도 어떤 관점에서 보는가에 따라서 결론과 대책이 팽팽하게 맞서있는 형국이다. 양쪽의 입장을 비교 해봐도, 어느 한 쪽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확실한 논거는 없다. 결국 양쪽 입장을 절충하는 방식으로 선택을 해야 하는데, 그 접점을 찾아가는 것도 매우 힘들어 보인다.

필자는 ‘투자재원은 조성하되, 사용방식을 혁신해보는 것은 어떨까?’라는 제안을 해보고 싶다. 2000년대 중반 벤처기업들의 자금난 해소와 벤처캐피탈들의 역량 강화를 위한 정책대안으로 모태펀드가 조성되었다. 이후에는 중소, 중견기업들의 자금난이 대두되면, 특정한 펀드를 조성해주는 대책이 자주 따라붙었다. 그런데 그 효과성이 얼마나 높은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모태펀드를 제외하고, 정부가 운영중인 펀드들 중에서 정책목적을 충분히 달성하고 있는 펀드가 얼마나 존재하는지 참 궁금하다. 그런데 이번에도 펀드를 만들어서 초기 기업 투자 및 M&A에 활용하겠다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일지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펀드를 조성하거나 확충한다고 한들 초기기업 자금난이 완화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힘들 것이다. 언론으로부터는 정부가 투자재원을 확충해줬는데, 돈이 시중에서 유통되도록 모니터링하지 않는다는 소리듣기가 십상일 것이다. 초기 기업가들에게서는 여전히 자금난이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정부 운용 투자펀드들은 간접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벤처캐피탈 및 앤젤투자자들이 투자펀드를 조성할 때 정부투자펀드가 투자자로 참여한다. 따라서 초기기업들은 벤처캐피탈이나 앤젤투자자들을 설득해서 투자를 받는 방식에서 변화는 없다. 시장원리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체계이고, 이 체계를 흔들거나 바꿔야 할 이유는 없다. 다만 우리나라 벤처캐피탈이나 앤젤투자자들은 안정지향성이 높아서, 창업 초기의 기업가들이 투자를 받기에 어려운 시장구조를 가지고 있다. 결국 벤처캐피탈이나 앤젤투자자들의 투자성향을 바꿔줘야 한다는 사회문화 운동 성향의 결론에 도달해서,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이제 이런 과정을 벗어나서 투자재원을 조성하되, 활용방식을 바꿔서 미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인내자본(Patient Fund)을 한국형으로 변화시켜 설립하는 것을 제안한다. 미국의 인내자본은 실패 위험도가 아주 높은 극초기의 벤처기업에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펀드를 말한다. 한국형 인내자본의 정책목표는 시제품을 제작하고 있는 창업자들이 투자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집행방식은 정부가 공공투자기관을 설립하고, 이 기관이 조성한 펀드에서 내부 전문인력을 두고 직접투자를 수행한다. 다만 사용용도는 시제품 제작, 초기 마케팅 활동, 연구개발에만 한정하여 피투자기업이 자금을 쓸 수 있도록 하여, 높은 위험을 감수하면서 장기간 투자를 집행하되 창업자의 도덕적 해이는 방지해야 한다. 이러한 인내자본을 만들어줌으로써, 다수의 초기기업가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새로운 벤처생태계의 활성화 대안으로 제시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