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국회공전, 금융권 무관심에 구호만 남은 '데이터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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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산업 가운데서도 데이터 분야 혁신이 가장 더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시민단체 반발과 국회 공전으로 인해 국제 사회 흐름에 걸맞은 최소한의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손발이 맞지 않는 정부와 국회, 산업계 움직임에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데이터 기반 혁신은 점차 늦춰지고 있다.

논의의 장이 사실상 막혀버리면서 데이터 경제로 전환은 제대로 된 민간 사업자 의견수렴 없이 정부와 공공기관이 주도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모양새다.

통신, 핀테크기업 등 데이터 관련 기업들은 제도화 이전부터 섣불리 앞서 나가서는 호된 정을 맞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또 금융권은 의도적으로 혁신을 외면하는 모양새다.

[이슈분석]국회공전, 금융권 무관심에 구호만 남은 '데이터 혁신'
[이슈분석]국회공전, 금융권 무관심에 구호만 남은 '데이터 혁신'

◇민간 참여 없는 정부 주도 데이터 생태계

금융위원회와 신용정보원은 3일 데이터 분석과 활용을 위한 '금융 빅데이터 개방시스템' 오픈식을 개최하고 '금융 빅데이터 인프라' 로드맵도 공개한다.

또 금융보안원에 설치할 데이터 유통과 중개를 전담하는 '금융분야 데이터 거래소' 운영방안도 발표한다. 금융분야 데이터 인프라를 통해 이종 산업간 데이터 결합을 지원하는 방안 등도 대거 공개한다.

금융권에 양질의 데이터를 분석·유통·결합할 수 있는 데이터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첫 발을 딛는 자리다.

지난해 6월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의결한 범정부 단위의 '데이터 산업 활성화 전략'이 발표된 이후 약 1년 만에 구체화 방안과 향후 추진계획을 논의하는 첫 자리인 셈이다.

그러나 정작 금융권 반응은 미지근하다. 데이터 기반 혁신 주체인 금융업권 대부분은 논의 단계에 적극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국회 공전 등으로 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못한데다 통과 여부조차 불투명하다보니 데이터 관련 신규 사업도 우선은 관망하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내린 가이드라인을 따랐음에도 고발까지 이어진 만큼 현재로서는 정부 논의를 지켜보는 것이 최선”이라고 전했다.

실제 2016년 방송통신위원회 등이 제정한 '개인정보 비식별조치 가이드라인'에 따라 빅데이터 서비스를 제공했던 20개 기업과 4개 비식별화 조치 기관은 시민단체로부터 고발을 당했다. 지난 4월 검찰이 이들 기업의 행위를 무혐의 처분하며 논란을 종식시켰지만,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은 현재로서는 민간 기업이 섣불리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다.

◇국회 논의 조차되지 못한 '개망신법'...후속 대책은 더욱 난항

현재 국회에 계류된 데이터 혁신 관련 법안은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신용정보법 개정안' 등 이른바 '개·망·신법'으로 불리는 총 3개안이다.

각 개정안에는 지난해 5월 시행된 유럽연합(EU)의 개인정보보호법(GDPR)에 담긴 본인 개인정보에 대한 통제권 확대를 목적으로 하는 필수 사항이 담겨있다. 추가 정보 없이는 특정 개인을 식별할 수 없도록 한 '가명정보' 개념을 도입, 새로운 기술·제품·서비스 개발 등 산업적 목적을 포함하는 과학적 연구 등이 가능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 개정안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그나마 논의를 개시한 행안위에서도 개정안에 담긴 방대한 내용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진척을 이루지 못했다. 국회 전문위원실이 발간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 검토 보고서는 200페이지 분량을 훌쩍 넘긴다.

금융권에서 데이터 혁신과 관련한 논의에 적극 참여하기를 꺼리는 주된 이유도 이처럼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 때문이다.

단적으로 상업적 목적의 통계 작성과 산업적 연구를 목적으로 정보 주체 동의 없이도 제공·활용하는 것이 과도하다는 시민단체의 지적뿐만 아니라 데이터 결합 전문 기관을 공공부문이 아닌 민간에게 확산하도록 하는 방안까지도 정부와 국회, 시민단체 등과 복잡하게 문제가 얽혔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데이터 결합 기관을 공공에 몰아주는 현 개정안으로는 민간 부문에서 데이터 혁신에 동참할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제도 통과를 위해서는 우선 시민단체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는 절충안을 내놓고 있는 형국”이라면서 “이래서는 논의에 참여할 유인도 없거니와 반대 진영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오픈뱅킹·표준API...산더미 과제 속에 금융권 '무관심'

금융권이 논의 자체에 참여하기를 꺼려하면서 당장 속도감을 갖고 추진해야 할 오픈뱅킹 등 당면과제도 속도가 붙지 않고 있다. 금융위는 지난 4월말 신용정보법 개정에 대비하기 위해 정부, 유관기관 등으로 구성된 데이터 표준API 워킹그룹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은행, 보험, 카드, 금융투자 등 전 금융권을 넘어 정부와 공공기관, 이동통신사 등을 아우르는 데이터 표준 마련을 위한 핵심 논의 기구지만 정작 변화에 직면한 업체를 제외하고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픈뱅킹 도입으로 인해 당장 혁신을 꾀해야 하는 은행, 카드 업계를 제외한 나머지 금융권에서는 당면 과제에 대한 인지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핀테크 기업과 갈등도 첨예하다. 데이터 기반 혁신이 기존 금융권의 먹거리에 직접 위협을 주는 만큼 지키는 자와 뺏으려는 자의 갈등이 벌어지기 일쑤다.

핀테크 업계에서는 “표준API 등을 통해 제공할 범위 등을 우선 정해야만 제도 개선에 발맞춰 치고 나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기존 금융권에서는 “당장 매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제도 변화에 민간이 팔 걷고 나서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맞서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제도 변화에 따른 후속 조치를 관망하는 것이 대다수 금융권의 시각”이라며 “혁신성장보다는 우선 자신의 먹거리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당장 제도 통과 없이는 EU 등지에 데이터 기반 사업의 수출 자체도 원천 봉쇄되는 만큼 서둘러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지만 쉽사리 진척이 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제도 개선 추진과 함께 민간의 목소리도 동시에 가져갈 수 있도록 다각도로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