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선]의미 없는 대기업참여제한 공방

중견·중소 소프트웨어(SW) 기업 육성을 위해 2013년에 도입한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는 시행 이래 논란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올해는 백신 예약시스템 장애를 놓고 대기업 참여 배제로 인한 문제라는 비판이 거셌다. 제도를 폐지하고 대기업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연이었다. 반면에 수요 예측과 예산 투입 등 발주처의 프로젝트 관리 능력이 문제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았다.

[ET시선]의미 없는 대기업참여제한 공방

올해 6월에는 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 부처에 대기업 참여 인정 권한을 부여하는 SW진흥법 개정안을 발의, 논란이 일었다. 부처별 특성 반영과 책임 있는 행정서비스를 목적으로 내세웠지만 중견·중소기업은 대기업 참여제한제도를 무력화시킬 것이라고 반발했다. 얼마 후 국무총리 주재의 규제 챌린지 논의 과제로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가 포함된 게 알려지면서 다시 이목이 집중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규제입증위원회와 국무조정실 회의에서 당장 개선이나 폐지보다는 장기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지난해 말 공공SW사업 제도 개선이 한 차례 이뤄진 만큼 시기상으로 부적절하다는 판단도 반영됐다. 당시 도입된 대기업 참여제한 예외 인정 여부 조기 심사제, 부분 인정제, 대기업 참여 민간 투자형 SW사업제도 등은 아직 사례가 없다. 대기업 참여제한 논란을 잠재우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공공분야는 2025년까지 모든 정보시스템의 클라우드 전환 등 디지털전환을 가속한다. 대기업 참여제한 논란이 지금보다 더 거세질 수밖에 없다. 논란을 잠재우려면 제도의 실효성을 판단할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세밀한 다각도 연구와 이를 바탕으로 한 통계자료는 필수다. 우리나라는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으로 성장했지만 산업 정책을 위한 통계자료가 부족하다는 게 소프트웨어(SW)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국내 산업 통계를 IDC나 가트너 등 해외 시장조사업체의 보고서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월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가 발간한 '한국의 SW기업 생태계와 지도' 보고서가 유일하다. 보고서는 2018년까지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의 공공부문 매출, 영업이익률 변화 등을 통해 제도가 미친 영향을 추정했다. 대기업이 하던 특정 사업을 중견기업이 하면서 유의미한 변화가 생긴 것인지 등 상관관계와 성과분석에는 한계가 있다.

제도 관련 연구·통계가 부족해 같은 현상을 두고도 해석이 제각각이다. 공공분야 중견기업 영업이익률이 1~2%에 불과한 것에 대해 대기업은 제도의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중견기업은 공공사업 예산이 적기 때문이며, 영업이익률은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섰다는 입장이다.

대기업이 실제로 공공사업에서 발을 뺀 것은 2015년으로 봐야 한다. 기존 사업과 비용 정산 때문이다. 중견·중소기업의 공공 분야 매출이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17년 전후다. 2015~2020년 제도 도입에 따른 영향을 자세히 분석해야 제도 실효성을 파악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제도 유지나 개선, 폐지 여부는 그 이후에 논의해야 한다. 지금 벌어지는 대기업 참여제한 논란은 의미 없는 공방일 뿐이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