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블은 제프 라스킨과 함께 일하기 위해 매킨토시개발팀에 합류했지만, 라 스킨이 스티브 잡스와 사이가 나빠지게 되자 그의 의욕이 시험대 위에 놓이게 되었다.
애플사 사장이 "리사" 프로젝트 팀장으로 임명해 달라는 잡스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자 잡스는 매킨토시팀으로 옮기려고 결심했다. 잡스가 "리사" 프로 젝트의 책임을 맡는 것이 어렵게 되자 그는 다른 프로젝트를 물색했고, 결국 라스킨의 매킨토시팀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얼마안가서 불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라스킨과 잡스는 가격에 영향을 주게될디자인 결정을 놓고 가장 심한 의견차이를 보였다. 가격을 가능한 한 비싸지않게 하여 1천달러정도에 판매하기 위해서 라스킨은 잡스와 반대로 새 칩보다는 기존의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채용하려고 했다. 여기에서 잡스의 견해가 우세했다. 그러나 새로운 칩을 택하게 되면 그에 따라 하드웨어사양도 달라져야 했다. 컴퓨터의 데이터를 저장하기 위해 느리긴 하지만 단가가 낮은 일종의 변형 테이프리코더를 사용하는 대신, 단가는 높지만 훨씬 빠른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채용해야 했다.
컴퓨터 기억용량도 원래 계획했던 6만4천바이트보다 확장시켜야 했다. 화면의 확대, 자판의 분리 등과 같은 변경사항 역시 가격을 훨씬 더 높이는 요인이 되었다. 라스킨은 제품단가가 치솟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했으나 허사로 끝나자 결국 잡스를 통렬히 비난하는 문서를 작성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남의 말을 듣지 않았고, 분별없이 행동했으며, 칭찬에 인색했다. 그는 사람을편애했고 약속을 어겼다"등등. 라스킨은 회사의 공동설립자인 잡스와 대결 했지만, 그를 이기기에는 사내기반이 너무 약했다.
그들사이에 버드 트리블이 있었다. 오랜 친구 라스킨은 트리블을 설득해서 매킨토시가 설계나 가격면에서 리사처럼 되지 않도록 막으려 했고, 또 한편에선 스티브 잡스가 트리블이 작업하고 있던 소프트웨어를 탑재할 수 있게끔고성능 하드웨어를 개발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기술중독자" 트리블은 보다 "환상적인 비트"의 컴퓨터를 선호했다. 훗날 트 리블은 당시를 되돌아보며 "그같은 유감스런 정치적인 일들이 벌어졌었지"라 고 말하곤 했다. 매킨토시에 몰두한 그는 프로젝트가 완성되기를 바랐으며잡스의 판정승으로 라스킨이 회사를 그만두게 되자, 매킨토시 프로젝트를 끝까지 지원하게끔 만들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이든지간에 그를 지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잡스에게 달라붙었다.
라스킨이 애플사를 떠나고, 3년이 지난후 매킨토시가 출하되었을 때 그 가격 은 라스킨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2천4백95달러였다. 그러나 잡스와트리블에게는 운이 따라서, 매킨토시에 채용한 반도체가격이 예상밖으로 하락했기 때문에 가격이 상당히 내려갔다. 매킨토시가 시장에 나오자 잡스와 트리블을 비롯한 고성능컴퓨터개발을 주장했던 사람들이 옹호를 받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같은 컴퓨터도 용량이 부족하다느니, 느리고 작으며 기능을 충실히 수행해내지 못한다는 평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트리블은 한때 매킨토 시 컴퓨터의 용량을 당초 계획한 6만4천바이트보다 두배로 늘린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것도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새로운 매킨토시는 훨씬 더 많은 용량을 필요로 했다. 애플사로서는 잡 스와 트리블의 견해가 승리했다는 사실이 천만다행이었다.
매킨토시의 사양 결정이 모두 다 현명했던 것은 아니다. 잡스는 마우스를 사용해 컴퓨터 화면상의 화살표를 움직이는 것을 좋아해서 마우스를 사용해야만 화살표를 움직일 수 있게끔 하려고 했다. 그는 연구원들의 반대에도 불구 하고 다른 컴퓨터에서는 표준화되어 있는 화살표 키를 매킨토시 자판에는 만들지 않기로 결정했다. 사용자가 사용할 수 있는 것과 못하는 것을 지정해야 한다고 생각한 잡스는 매킨토시를 완전히 "밀폐된"박스로 만들어버렸다. 사용자는 다른 장비를 추가할 수도 없었고 심지어 컴퓨터 내부를 들여다보지도못했다. 사용자가 실수로 뚜껑을 열게 되면 이상이 생기게 되어 있었다. 애 플은 다른 컴퓨터업체가 만든 다양한 주변기기에 대해 고민할 필요없이 쉽게매킨토시의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IBM은 박스안 에 빈 슬롯이 있는 "개방된"컴퓨터를 제공하여 소비자들로 하여금 기억용량 을 확장시키고 다른 회사의 주변기기를 추가하며 컴퓨터를 자신의 필요에 따라 다양하게 조정할 수 있게 했다. 잡스는 IBM PC와 매킨토시보다 먼저 나온애플 의 개방성이 그 컴퓨터를 성공시켰다는 사실을 무시했다.
만약 제프 라스킨이 매킨토시 프로젝트 책임자였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라고묻는다면 가격은 훨씬 저렴했겠지만 그에 따라 성능이 훨씬 약한 매킨토시가 탄생되었을 것이라고 대답이 나올 것이다. 경제성보다 성능을 택한 잡스의 생각은 옳았다. 그러나 자판, 애드 온 보드를 비롯하여 기타 컬러 디스플레 이 또는 플로피디스크보다 더 많이 저장할 수 있는 하드디스크드라이브 등 소비자의 선택권을 도외시한 것은 옳지 않은 결정이었다.
매킨토시가 발표되자 여러가지 설계상의 문제가 제기됐다. 후에 애플사가 잡 스의 결정을 번복하고 선택의 폭을 제한한 이러한 문제들을 개선하지 않았더라면 매킨토시는 틀림없이 사라져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때는 이미 잡스가 넥스트사로 옮겨간 후였고 그로 인해 문제들이 다른 사람들의 손에 의해 해결되었다. 또 당초 매킨토시를 창안한 사람은 라스킨이었지만 매킨토시를 성공시킨 공을 가져간 사람은 잡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