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구경.
현미는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는 은행앞 환풍구와 세종로 지하도 쪽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창 밖으로 바라보면서 인간의 잔혹성에 대하여 생각했다.
불구경이라는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불난 집의 상심은 아랑곳 않고 불구경이라는 말이 통용화될 정도로 자기와 관련없는 화재에 대해 구경으로 즐기는 인간의 마음이 못내 안쓰러운 것이었다.
고객들이 다 빠져나간 은행 안에도 연기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현미는 다시 한 번 시계를 보았다.
16:13.
『현미씨, 먼저 나갔다 와봐.』
현미는 자기 자리를 지켜주겠다는 혜경의 말을 뒤로 하고 밖으로 나섰다.
은행앞 도로가의 환풍구에서 솟아오르고 있는 연기가 현미의 숨을 막히게 했다.
고약한 냄새.
하늘 높이 솟구치는 연기.
불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18차선. 열여덟 개 차선의 넓은 광화문 네거리는 연기가 자욱했고, 몰려든소방차에서 질러대는 사이렌 소리가 요란했다. 사이렌 소리. 웨앵, 웨앵거리며 울리는 사이렌 소리가 환풍구에서 솟구치는 시커먼 연기를 더욱 검게 하는 듯했다.
불꽃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세종로 지하도와 길 건너 동아일보사 앞의환풍구, 교보빌딩 옆의 환풍구에서도 연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프레스센터와시청 쪽의 환풍구에서도 연기가 솟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대형 사고였다. 현미는 숨이 막힐 정도로 밀려드는 연기와 사람들을 피해가며 세종로 지하도쪽으로 다가갔다.
종로 쪽의 상황이 궁금한 것이었다. 남쪽을 향해 늠름하게 서 있던 이순신장군도 시커먼 연기에 가려져 있었다.
종로 쪽의 환풍구에서도 연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광화문우체국 앞의 환풍구에서부터 종각 지하철역까지의 환풍구에서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고, 차량통제가 이루어진 그 넓은 도로에는 소방차의 경보등이 번쩍거리고 있었다.
『현미씨, 지하철에서 불났대. 지하철을 따라 연기가 솟구치고 있고, 지하철도 통행금지됐대. 저쪽 종각역 환풍구에서도 연기가 나고 있어. 대형 화재래!』
좀전에 은행에서 뛰쳐나왔던 이 대리였다.
『지금 세종로 지하도에 붙어 있는 서점에서는 난리가 났대. 책에 불이 옮겨 붙을까봐 전 직원이 소화기를 들고 비상대기중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