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삼국지 아시아 IT 대로망>16회-스산한 겨울 바람

딩루이(丁磊)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스닥 시장의 침체로 왕이(網易:netease.com)의 주가가 폭락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22일 현재 3.75달러. 10월 중순 이후 4달러 안팎을 맴돌고 있다. 이달초 한때 5달러를 돌파했으나 곧 주저앉았다.

딩루이는 7월 상장 직후 15달러를 웃돌았던 때의 감격을 이미 잊었다. 이미 주가는 발행가격 13달러의 반에 반토막 수준이 됐다. 투자자들의 원성도 높아졌다. 『미래 성장성을 보라』라는 설득도 약효가 떨어졌다. 왕이를 창업한 딩루이는 중국 최고의 디지털 갑부다. 주가가 폭락했어도 6500만달러를 보유하고 있다.

그의 관심은 돈보다는 기술 개발이었다. 여기에 전념하려고 스스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불과 28세의 나이라는 점에서 신선한 충격을 줬다.

그런데도 딩루이는 좀처럼 바닥세를 면치 못하는 주가에 온 신경이 가 있다.

나스닥 진출의 성공으로 이미 자본주의의 맛에 길들여졌다. 또 이회사를 더욱 키우려면 지속적인 자본 조달이 필요하고 어떻게든 주가를 떠받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방법이 없다. 미국의 초우량 정보기술(IT)기업들의 주가도 휘청거리는 판에 어찌할 도리가 없다.

나스닥에 진출한 중국의 다른 인터넷업체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시나닷컴, 소후닷컴, 차이나닷컴 역시 올 겨울들어 주가가 추락을 거듭했다.

나스닥에 속속 입성하면서 중국 인터넷의 총아가 된 이들 4개사는 북미의 매서운 「블리자드」를 온몸에 맞고 있는 것이다.

「이들 회사와 함께 뭔가 대안을 모색해 볼까.」 딩루이가 이런 저런 생각에 뒤척일 즈음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지에 피터 입 차이나닷컴 회장이 등장했다.

피터 입 회장은 『중국 1∼3위 포털업체인 시나닷컴, 소후닷컴, 넷이즈닷컴과 합병했으면 한다』라면서 『이는 인터넷 시장의 추운 겨울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딩루이도 차선책으로 이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입 회장이 먼저 운을 뗀 것이다.

사실 이 인터뷰 이전에 차이나닷컴 쪽에서 비슷한 제안을 해온 바 있다. 「그나마 잘 나가는 편인 시나닷컴의 왕즈둥 사장이 먼저 제안했다면….」

딩루이는 아쉬움이 남긴 했으나 다른 회사와의 합병을 적극 검토해보기로 했다.

시나닷컴이나 소후닷컴은 상대적으로 시큰둥했으나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반응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대표적인 포털사이트들이 힘겨운 하루를 보내고 있는 반면 8848.net, 궈구동리(硅谷動力), 차이나DNS와 같은 전자상거래 업체들은 하루가 다르게 커갔다.

공짜를 좋아하는 네티즌이 대부분인 포털사이트와 달리 뚜렷한 수익 모델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8848.net은 중국 최대의 전자상거래 사이트로 올 들어 인터넷 판매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왕쥔타오(王峻濤) 사장은 이르면 내년 안으로 손익분기점을 넘을 것으로 믿고 있다.

궈구동리 역시 지난 여름 IT상거래 사이트를 개설한 이후 기업과 정부는 물론 일반 소비자까지 끌어들여 IT상거래의 대표주자로 떠올랐다.

전문업체뿐만 아니다. 심천의 대표적인 대기업 캉지아그룹은 IBM과 전자상거래에 대한 기술 합작을 통해 이 시장에 본격 뛰어들었다. 가전의 대표주자인 하이얼그룹도 자체 설립한 전자상거래유한공사를 통해 중국내 기업간(B2B)상거래는 물론 기업과 소비자(B2C)상거래를 이끌고 있다.

이들 전자상거래 업체들은 올들어 폭발적으로 전자상거래 수요에 힘입어 내년께에는 포털사이트를 제치고 중국 인터넷산업의 맹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코스닥의 성장에 힘입어 인터넷 벤처기업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으나 올 하반기들어 주춤하고 있다.

침체돼 성장의 원동력인 벤처자금 줄이 끊기면서 사활의 기로에 섰다. 특히 인터넷 콘텐츠업체들의 어려움은 더욱 심각하다.

주 수입원인 배너광고로는 입에 풀칠하기조차 어렵다. 무엇보다 적절한 수익 모델을 찾지 못해 자생력도 없다.

이렇게 된 것은 코스닥 시장의 침체다. 그러자 벤처자본들이 손을 떼기 시작했으며 기술력도 마케팅력도 없이 「눈먼 돈」에만 의존했던 인터넷 벤처회사들은 차가운 겨울 거리로 내몰렸다.

반면 「오프라인」에 강한 전자상거래 전문업체나 대기업들은 「인터넷 거품논쟁」과 무관하게 제 갈길을 간다.

대기업과 일부 전문업체들은 잇따라 사이버 시장을 만들면서 인터넷의 힘을 갈수록 체감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쟁력이 없는 한국의 인터넷 벤처회사들은 여럿이 합치거나 대기업에 흡수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시장 위축이 워낙 급격히 진행돼 이러한 몸집불리기도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을 예견한 듯 다음커뮤니케이션, 네이버컴, 새롬기술 등 대표적인 업체들은 올들어 중소 벤처회사들을 잇따라 흡수 합병해 체력을 보강했다.

이제 시작이다. 내년부터는 더욱 많은 기업들이 힘을 합치는 합종연횡이 활발하고 대기업의 인터넷 벤처기업 인수도 본격화할 것이다.

『이러다가 몇몇 대기업이 시장을 주도하는 옛날로 돌아가는 게 아니냐』라는 반문도 나온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인터넷 벤처붐이 완전히 사그러진 듯 하나 일시적으로 주춤했을 뿐이다.

재야에는 제2의 다음, 제2의 새롬을 꿈꾸는 벤처회사들이 끊임없이 탄생, 소멸하고 있다.

다만 앞으로는 「제 5열」이 달라질 것이다. 인터넷 벤처의 태초에는 자본이 있었다. 처음에는 순수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검은 자본이 많아졌다.

최근 벤처기업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가 잇따라 정치사회에서 문제화하면서 얼룩진 자본은 도망갈 준비를 한다. 그 자리를 누가 메울까. 바로 대기업과 개미군단이다.

그동안 인터넷 벤처기업의 등장을 지켜보기만 했던 대기업들은 요즘처럼 안좋은 상황을 틈타 좋은 「옥(玉)」만 골라가질 수 있게 됐다.

대기업들이 워낙 경영 환경이 좋지 않아 그 시점을 늦추고 있으나 내년에는 본격적으로 손을 대기 시작할 것이다.

증시의 희생양인 개미군단들도 잠재 후원자다. 지금은 투자한 기업에 묶여 어찌할 바 모르고 있으나 내년 상반기 이후 시장이 좋아지면 빠져나와 인터넷 벤처나 관련 대기업에 투자해 그동안의 손실을 만회하려 할 것이다.

인터넷 기업으로선 「돈싸움」과 「장난질」만 있던 땅을 떠나 진짜 실력을 겨룰 수 있는 「가나안」으로 갈 수 있다. 특히 실력을 검증받은 전자상거래 전문업체들은 그 곳에서 가장 깃발을 날릴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인터넷 기업들은 어떨까.

이들 기업의 후원자는 화교자본과 정부였다. 홍콩과 뉴욕을 중심으로 폭넓게 퍼져 있는 화교자본들은 중국 인터넷 산업의 잠재력을 보며 상황이 조금만 개선되면 곧 투자를 재개할 것이다. 중국도 마찬가지로 전자상거래 전문업체에 투자가 집중될 전망이다.

사실 인터넷은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중화경제권을 하나로 끌어모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지금까지 중화 경제는 각국 단위로 형성됐으나 실시간 중국어서비스가 가능한 인터넷의 등장으로 지리적인 장벽이 허물어졌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이 이뤄지면 단일한 중화경제와 이를 뒷받침하는 화교자본은 전면에 등장할 것이다.

중국 정부 역시 전자상거래 육성을 위해 인프라 구축에 발벗고 나섰다. 중국 정부로선 정치적으로는 위험천만한 물건이기는 하나 전체 경제를 이끄는 막강한 힘을 가진 인터넷을 무시하지 못한다.

장쩌민 주석, 주롱지 총리 등 최고권력자들까지 관심을 갖고 있으니 최근 외부에서 보듯 중국의 취약한 인터넷 인프라를 개선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중국의 올해 인터넷 인구는 300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30%를 넘는 한국과 비교하면 극히 적은 수치이나 지난해에 비하면 4배 이상 늘어났다.

1년전만 해도 시나닷컴, 차이나닷컴 등 포털사이트가 고작이었으나 쇼핑몰, 인력시장, 학교 투자자문센터, 여행사 등의 전문 사이트들도 수만개에 이른다. 사이버 쇼핑몰도 1000개에 육박하고 있다.

최근의 닷컴 위기는 오히려 부적절한 기업을 걸러내는 장치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에서 다시 인터넷 벤처붐이 인다면 올해와는 다를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디지털 경제의 엔진으로 제 구실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중국이 WTO에 가입만 해도 상황은 바뀐다. 이번 겨울만 잘 넘기면 돼. 경쟁사들이 같이 동면하자면 그러지 뭐.」 어두운 딩루이의 얼굴에선 희미하나마 희망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