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동지가 오늘은 적.’
삼성전기·이수페타시스 등 인쇄회로기판(PCB)업체들이 최근 일본시장 공략에 나서면서 국내업체와 수년 동안 협력관계를 맺어 온 일본업체들이 ‘한국 경계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한·일 PCB업계에는 우호적인 분위기는 싹 가시고 팽팽한 긴장감만 연출되고 있다.
특히 한국업체와 기술협력 관계를 맺어 온 이비덴(IBIDEN)·메이코(MEIKO) 등 일본업체들은 한국업체들의 잇단 공세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지난 85년부터 이비덴과 기술협력을 맺어 온 삼성전기(대표 강호문)가 올해 초 일본의 빌드업(build-up) 기판시장에 진출하자 이비덴과의 교류가 뚝 끊겼다. 이 회사가 도시바에 연간 40억원 규모의 노트북용 빌드업 기판을 공급하기로 하면서 이비덴이 기술 및 정보교류를 중단한 것. 여기에다 삼성전기가 지난 3월 인텔로부터 플립칩(flip-chip) 기판 공급업체로 선정되자 경계의 눈초리를 늦추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 회사의 한 관계자는 “이비덴이 인텔의 플립칩 기판 물량을 놓고 한판승부를 벌여야 하는 현실에 두려움을 갖는 것으로 보여진다”며 “특히 수년째 내수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본시장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고 말했다.
지난 88년부터 메이코와 기술협력관계를 가져 온 이수페타시스(대표 김종택)도 최근 도쿄에 판매지사를 설립하는 등 이동통신단말기와 노트북에 들어가는 빌드업 기판시장에 진출하자 일본업체로부터 강한 견제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는 이달 초 일본 도쿄 빅사이트에서 열린 ‘JPCA(Japan Printed Circuit Association)쇼’에 참가, ‘이수페타시스’ 브랜드를 알리는 성과를 거둔 한국업체 가운데 빅5에 해당하는 업체.
현재 상황으로는 비정기적인 기술교류마저 어려울 것 같다는 게 회사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같은 일본업체들의 예민한 반응은 기술협력을 통해 한국업체들의 가능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빌드업 기판과 볼그리드어레이(BGA) 시장에서 한·일 격돌이 벌어지면 가격경쟁력에서 열세를 보이는 일본업체들이 안방을 송두리째 내줄 수 있다는 우려도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에 대해 전자산업진흥회의 한 관계자는 “과거 국내업체들은 일본업체로부터 기술을 배워 오는 수준이었으나 지금의 상황은 일본업체와 어깨를 겨룰 만큼 기술력이 크게 향상된 현실을 그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면서 “이에 따라 앞으로 한·일 PCB업체들의 협력은 상당히 제한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