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코스닥 진입이라는 목표를 보류하고 나니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안팎으로 재정비한 뒤 다시 뛰어야했다. 우선 규모가 커진 조직에 대한 직급체계와 인사관리, 실적평가 등의 경영전반을 정비하고 사업부장 체제를 구축해 콘텐츠 분야와 커머스 분야로 대표되는 다날의 양대 사업영역에 대한 내부시스템을 확고히 다졌다. 아울러 사람이 중요하다는 평소 신념에 맞게 직원복지를 강화해 전직원 종신보험 가입 등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는 제도를 발굴,직원들의 만족도를 높여갔다.
‘지속적인 성장’은 최대의 과제이자 최고의 난제이기도 하다. IT와 벤처가 화두로 떠오른지 불과 10년도 안되는 결코 길지 않은 이 시기에 도태되는 기업들을 많이 보아왔다. 특히 변화가 빠른 정보통신분야에서 도태되지 않고 지속적인 성장을 가능케 하려면 끊임없이 변화해야만 했다.
이런 맥락에서 2001년 게임팀을, 2002년에는 멀티미디어사업부(현 미디어사업부)를 각각 신설했다. 당시 무선인터넷 환경은 CDMA2000 1x EVDO가 상용화되는 시점이었고 이에 따라 각 이통사에서는 ‘준’과 ‘핌’ 브랜드를 앞세워 새시장을 열어가고 있었다.
기획자와 방송제작이 가능한 인력으로 구성된 멀티미디어사업부에서는 당시 최초로 모바일전용 드라마 ‘휴대폰 속 연인’을 제작했다. 물론 현재 기획되는 모바일전용 드라마에 견줄 바 없는 초보적인 단계의 소품이지만 모바일환경에 맞는 개인화 된 첫 작품으로, 기존의 콘텐츠에서 한 단계 진일보한 것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기존 콘텐츠 역시 많은 변화를 거쳤다. 우선 벨소리 자체만 보더라도 최근에는 64화음이 일반화됐고 원음을 그대로 구현할 수 있는 환경으로 진화했다. 또 2002년에는 벨소리를 뛰어넘어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며 그 이듬해 단숨에 2000억 원의 매출규모를 형성한 통화연결음이 등장하기도 했다. 다날 역시 월드컵과 함께 네티즌 관심순위 1순위로 떠오른 ‘미나’를 모델로 한 TV광고를 제작하며 시장의 주도권을 장악해 갔다.
음악과 이미지, 게임과 음악 등 신규서비스도 지속적으로 오픈함으로써 무선인터넷 대표기업으로서의 입지를 탄탄히 다지게 됐다. 직원들도 해마다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 때문에 직원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과 기업문화의 정착이 절실해졌다.
특히 커머스와 콘텐츠라는 상이한 두 부분이 공존하면서도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시너지효과를 십분 활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직원간 일치단결이 필수적인 요소였다. 다행히도 비슷한 또래의 젊은 인력들이 주축이 되다보니 조금만 분위기를 형성해 주어도 부서간 이질감 해소에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잦은 야근으로 여가시간을 제대로 즐길 수 없는 직원들을 위해서 매달 한차례씩 전직원이 함께 하는 이벤트데이를 기획했다. 영화관을 대관해 전직원이 함께 영화를 보고 맥주를 마시며 허물없는 대화의 시간을 갖기도 했고, 팀을 나눠 볼링대회를 하거나, 아이스링크에서 더위를 잊기도했다. 한강유람선을 전세 내 서울의 야경을 즐겼던 선상파티는 지금도 업계에서 회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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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년 가을 한강 유람선을 빌려 전직원 단합대회를 가졌다. 맨 왼쪽이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