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레벨과 차 한잔]한화증권 이종우 상무

증권사 애널리스트라면 누구나 꿈꾸는 리서치센터장. CRO(Chief Research Officer) 혹은 리서치 헤드라고도 불리는 이 자리는 전략적 시장 분석과 증시 흐름에 탁월한 능력과 감각을 보유한 최고수들만이 오를 수 있는 위치다.

 2003년부터 한화증권 CRO를 맡고 있는 이종우 상무는 89년 대우증권부터 시작해 15년 만에 최고의 자리에 오른 증시 분석통이다.

 “이제 더는 올라갈 곳이 없다는 의미기도 하죠. 이제까지 남들보다 좋은 조건으로 살았으니 앞으로는 남에게 돌려주는 일을 찾으려고 합니다.”

 날카롭고, 분석적이고, 빈틈이 없을 것 같은 ‘전형적인 증권맨’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차 한 잔을 마신 뒤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1시간30분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이 상무가 왜 증권기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취재원인지 알 듯하다. 증권이면 증권, 생활이면 생활 어떤 질문이든지 대충 넘어가는 법 없이 솔직하고 성의있게 답해 준다.

 “89년 증권에 첫 발을 내디딘 후 8년 동안은 기자로 치면 수습·신참 노릇만 했습니다. 인터넷이 없던 때라 위에서 지시가 내려지면 해당 자료를 찾기 위해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녔죠. 걸프전 당시 국제 유가 동향을 찾으려고 국회와 전경련 도서관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던 기억이 선합니다.”

 그는 97년 ‘외환위기의 영향’이라는 첫 기명 리포트를 썼을 때의 뛸 듯한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한다.

 애널리스트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짜릿했던 순간도 경험했다. 2000년은 개장 당시 종합주가지수가 1050까지 갈 정도로 증시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 그해 증시 전망을 두고 모든 애널리스트가 1800까지 갈 것이라는 낙관적인 의견을 내놓았을 때 이 상무만이 유일하게 대세 하락이 우려된다는 부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모두 이상하게 쳐다봤지만 그로부터 정확히 8개월 만에 주가지수가 500포인트나 빠졌다.

 “장이 안 좋아서 안타깝긴 했지만 애널리스트로서 그보다 더한 쾌감은 없을 겁니다. 그때부터 오랫동안 비관론자라는 낙인이 찍히기도 했지만요” 하며 껄껄 웃는다.

 하지만 이 상무는 요즘 증권 애널리스트들이 미국 방법론에만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위험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해져서 아쉬움이 많다.

 “주식 시장은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기 때문에 틀리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혼신의 노력을 다해 자신의 모든 걸 쏟아부어야죠.”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이 상무는 더 욕심 부리지 않고 관심 분야인 역사와 동양고고학을 더 공부하고 싶단다. 또 정치개혁을 위해 마음에 드는 정치인을 후원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자원봉사활동도 계획하고 있다.

 돈과 명예만을 좇기 쉬운 바닥에서 쉽게 세울 수 있는 계획은 아니다. 끝으로 IT에 관심이 많으냐는 기자의 질문에 휴대폰에 관한 한 얼리 어답터를 자부한다는 그는 “한국이 뭘로 먹고 살겠습니까. IT밖에 없습니다. IT 중소벤처기업이 사느냐, 못사느냐에 따라 한국의 미래가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조인혜기자@전자신문, ih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