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조순 부총리의 결단
우수연구센터사업(SRC 및 ERC)사업이 발표되자 우리나라 대학가에 엄청난 연구사업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한국과학재단이 갖고 있었던 기금만으로 그 소요 재원을 충족시킨다는 것은 턱도 없는 일이었다. 한 센터마다 최장 9년간 10억 원까지의 연구 자금을 지원하자면 정부의 추가 출연이 절실히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수연구센터사업이 1989년 봄에 기획되었으니 당해 연도용 예산을 추가로 획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고 이미 틀이 잡힌 예산안을 바꾸어 전용하는 것도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니 한국과학재단의 신규사업 예산 요청을 받은 과학기술처는 사업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미 형성된 예산안의 틀을 바꾸는 데에는 난색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수연구센터사업 공모는 이미 끝났고, 심사도 급속히 진행되었다. 예산 확보를 해야 하는데 이미 지나간 버스를 타야 만하는 어려운 처지 때문에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미 예산안은 과학기술처를 떠났기 때문에 과학기술처에 아무리 호소한들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가 없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나는 조순 경제부총리에게 우수연구센터사업의 출연을 호소하여 그의 용단을 얻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조순 부총리와는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 위치한 부총리실에서 면담하도록 일정이 잡혀졌다.
당시 과학재단 임직원들은 그 면담 결과에 별로 기대를 걸고 있지 않았다. 재단 이사장으로서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것 정도로 인식했던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으며 우수연구센터사업이 침체에 빠져있는 대학의 과학기술 연구사업을 활성화 시킬 수 있다는 논리와 미국과학재단의 우수연구센터사업 성공 사례를 정리하는 등 최선을 다하여 브리핑 자료를 작성하였다. 정통 관료가 아니고 학자인 조순 박사는 열심히 보고하는 내 모습을 주의 깊게 바라보면서 예리한 질문을 거침없이 했고 그동안 정부가 연구비를 지원하였음에도 왜 교수들이 연구를 활발히 못해왔는지 비탄해 했다.
나는 연구비가 적정 수준에 미흡한 가운데 단기간의 연구 지원만 한다면 심도 있는 연구 사업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역설하였다. 또한 공무원이 전문 교수들의 연구 성과를 평가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전문가 집단 스스로의 철저한 자체 검증만이 유일한 평가 방법이고 따라서 분야별로 전문 교수들의 집합체(Cluster)가 형성되지 않으면 자율적으로 연구의 우수성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점도 확실하게 설명하였다.
과학기술 연구의 획기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없으면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수준의 차원을 격상시킬 수가 없다는 논리였다. 브리핑이 다 끝난 후 조순 박사의 응답을 기다렸다. 놀랍게도 부총리의 결단은 즉석에서 이루어졌다.
지금까지 왜 이러한 사업제의가 없었는지 아쉬워하면서 이처럼 혁신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예산 요청은 언제라도 환영하며 정부 예산안에 신규로 우수연구센터사업 출연을 삽입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대학 연구의 새 시대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국회는 정부예산안을 통과시켰고 한국과학재단의 우수 연구센터사업은 우리나라 연구지원 사업의 새 모델이 되었다. 13개의 과학연구센터 (SRC)와 공학연구센터(ERC)가 제1차 년도에 선정되었다. 이후에 지방대학과 지방과학 발전을 위하여 지역연구센터(RRC)가 추가됨으로서 한국의 대학은 연구센터를 중심축으로 하며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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