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 시장에서 오랫동안 강자로 버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정 기술이나 서비스가 서서히 표준으로 자리잡을 만하면 새로운 대체물이 나타나 왕위를 찬탈하는 일이 일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통신 시장은 사막의 삶과 같다’ ‘무법천지의 신세계’라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이 시장은 변화무쌍하다. 대개 변화나 움직임이 없으면 살아있는 것 같지 않겠지만 정보통신 시장은 그 변화가 유독 심하다. 이제는 변화 속도까지 빨라져 시장이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를 바라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새로운 대체물에 힘 한 번 제대로 못 쓰고 쓸모없는 신세로 전락한 정보통신 기술도 적지 않다. 가장 가까운 예가 ‘시티폰’이다. ‘알뜰 이동통신’을 내세웠던 시티폰은 같은 시기에 나온 PCS에 밀려 빛도 못 보고 사라졌다. 저렴한 요금이 강점이었지만 걷기만 해도 통화가 끊기는 불안정성 등으로 PCS와의 경쟁에서 참패한 것이다. 어떤 제품, 어떤 서비스든 품질과 가격 등 어느 것 하나라도 앞서지 못하면 시장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보여 준다.
PCS도 몇 년간 영화를 누렸으나 WCDMA(IMT2000)가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WCDMA도 마찬가지다. 벌써 그런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 3세대 기술인 WCDMA보다 데이터 다운로드 속도가 5∼7배 이상 빨라 3.5세대 기술로 불리는 휴대인터넷(와이브로)과 고속하향패킷접속(HSDPA)이 개발됐기 때문이다. 이미 와이브로는 내년 상용 서비스를 앞두고 있다. HSDPA도 서비스 사업자들이 본격적인 투자에 나설 계획이어서 이르면 내년에 서비스될 수 있다.
한편 WCDMA는 어떤가. 여러 명이 동시에 영상통화는 물론 통화를 하면서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일본·유럽에서는 이 서비스가 활성화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2003년 말 상용 서비스가 시작됐다. 하지만 WCDMA 사업자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투자에 머뭇거리면서 기술적 안정성 부족 등으로 보급이 늦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자칫하면 3세대 기술인 WCDMA가 이보다 한 차원 높은 3.5세대 기술과 같이 서비스되어 경쟁을 벌이게 될 판이다. 이로 인해 종래와는 전혀 다른 차세대 통신서비스 간 경쟁 양상을 보일 조짐이다. 유선 기반의 와이브로와 무선 기반의 HSDPA 간 경쟁이 예산된다, 또 같은 무선 기반인 WCDMA도 HSDPA에 자리를 내줄 가능성이 높다. 사업자들의 투자 의지와 소비자 선택에 따라 승부가 결정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 발 뒤에서 보면 무선호출기, 시티폰, PCS가 함께 경쟁을 벌이던 시장과 별반 다를 게 없다. 통신서비스 진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존재하거나 충분한 시장을 형성하지 못하고 소멸되는 ‘브리징(bridging)’ 서비스 얘기가 심심찮게 제기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동통신에서 전송 속도가 얼마나 빠르냐에 따라 서비스의 질이 달라지는 것을 감안하면 WCDMA가 브리징 서비스로 결론난다. 또 유무선통신 서비스의 발전을 고려하면 데이터 전송에만 장점을 보이는 와이브로도 거의 비슷한 처지가 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서비스별로 차별된 시장 활성화 대책이 필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정부가 동시다발적인 차세대 통신서비스 출현과 정책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 하는 점이다. 자칫하면 통신서비스 정책이 빠르게 발전하는 정보통신 기술 및 시장의 흐름에 뒤처져 시장 활성화에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성DMB가 시대를 읽지 못하는 규제 정책으로 지지부진한 것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윤원창 수석논설위원 wcy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