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가 선보인 자동차 조립라인이 생의학 연구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조립라인 방식은 1개의 연구소에서 단독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를 다양한 전공 분야의 연구원들에게 할당하는 일종의 협동적 학제적 연구방식으로 응용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소재의 녹내장연구재단(Glaucoma Research Foundation)은 조립라인 개념을 적용해 미국인의 실명 원인 2위를 차지하는 녹내장의 치료법을 찾고 있다. 스티븐 앤 미셀 커시 재단(Steven and Michele Kirsch Foundation, 이하 커시 재단) 역시 마찬가지다. 당시 이 재단의 이사를 맡고 있던 사라 캐딕씨는 녹내장연구재단에는 30년 동안 녹내장의 원인을 밝힐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들 두 재단의 관계자들은 녹내장 치료법 개발 가속화 방안을 논의한 결과 연구자금 지원도 중요하지만 더 절실한 것은 연구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이들 두 재단은 녹내장이 통상 눈 전면부의 질환으로 여겨지지만 시력 상실은 시신경과 망막 손상 때문에 발생한다는 점에 착안, 신경과학자·생리학자·발달 생물학자 등과 협조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두 재단은 ‘치료를 위한 촉매(Catalyst For a Cure)’라는 협동연구팀을 발족하고 4명의 연구원을 뽑았다. 이들 4명의 연구원은 각자의 연구소에서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실험 대상인 쥐와 쥐의 세포를 미국 동서부를 가로지르며 주고 받았다. 이 팀은 신경세포가 녹내장에서 사멸하는 조짐을 식별하기 위해 녹내장과 같은 질병의 여러 단계에 속한 쥐들에게서 발현되는 유전자를 찾고 있다.
조립라인 과학이 담긴 협동모델은 실리콘 밸리에서도 발견된다. 팔로 알토 소재의 미래 뇌암 연구소(Future Brain Cancer Institute)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내의 뇌암 관련 연구센터의 연구자금을 모으고 있다. 또 사라토가 소재의 미엘린 회복 재단(Myelin Repair Foundation)은 다발성 경화증에서 생물학적 과정 이상을 연구할 다양한 학문 분야의 연구팀을 구성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생의학 연구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는 정부 기관인 미 국립보건원(NIH:National Institutes of Health)도 지난 2003년 가을부터 로드맵 프로젝트 예산으로 협동적이고 학제적인 프로젝트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물론 일각에서는 협동 연구 방식이 하나의 초점을 다양한 전공의 연구원들에게 강요함으로서 순수 의학 연구 정신의 숨통을 조이고 관료주의의 비대화를 초대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한다.
그러나 NIH의 엘리아스 저후니 이사는 “로드맵 과정은 뭘 어떻게 해야한다고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들에게 혁신적인 연구 분야를 탐구하도록 자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NIH이 생의학 연구에 배정하는 연간 예산 280억달러 중 로드맵 프로젝트에 지원되는 것은 1% 정도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협동연구모델이 생의학 연구 속도를 가속화하고 질병 치료법을 보다 빨리 찾게 할 수 있을지 확인하려면 수 년은 걸릴 것”이라며 “그러나 독창적 연구 출판물로 성공을 측정하는 상황에서는 수년 동안 여러 연구팀이 같은 실험을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므로 협동연구모델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코니 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