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김영만 한빛소프트 사장(1)

[결단의 순간들]김영만 한빛소프트 사장(1)

(1)연구원에서 개발사업 팀장으로 전환 

 유난히도 수학을 좋아했던 필자는 1981년 광운대학교 전자계산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전자계산학을 전공하면 증권사나 은행의 전산실 쪽에 취업하는 것이 인기였다. 하지만 선배들은 해당 전산업무가 생산적인 개발 업무가 아니라며 전문적으로 개발을 요하는 곳으로 취업할 수 있도록 조언을 주곤 했다.

 대학 졸업 후 88년에 금성소프트웨어(LG소프트웨어)의 연구소에 입사, 신규 사업 부문에서 개발업무를 맡으며 ‘전문 엔지니어’로서의 꿈을 실현하고자 했다. 그러던 중 미국 출장에서 머리가 희끗희끗한 60대의 한 엔지니어가 수십 년간 같은 업무에서 전문 개발자로서의 경력을 쌓고, 동양의 ‘장인’과 같이 개발 노하우를 계속해서 쌓아가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몇 년간 소프트웨어(SW)를 개발하며 SW를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기술 영업’의 한계를 깨닫기 시작했다. SW를 이해할 수 있는 영업 인력이 부족한데다 영업직에 대한 구직률도 현저히 낮았기 때문이다. 결국 ‘기술 영업’이라는 직무로의 전환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는 그당시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결정이 됐고, 바로 그 결정이 ‘한빛소프트’를 설립하고 이끌어 온 가장 중요한 계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유통 영업을 담당하면서, 가장 먼저 SW의 시장 확산을 위한 시스템 정비가 시급함을 절실히 느꼈다. 90년대 초반에는 컴퓨터 기기와 같은 하드웨어의 거래 시장은 어느 정도 형성돼 있었지만 SW패키지 시장은 거의 형성돼 있지 않았고 소프트웨어에 대한 이해도 부족해 기술 영업에 어려움이 많았다.

 한편 LG소프트웨어는 ‘콘텐츠 비즈니스’가 미래 지향적인 사업으로서의 비전이 있음을 간파하고 일찍부터 ‘게임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하지만 회사는 수억원을 게임 개발에 투자했으나 PC패키지 게임은 수천개 팔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게다가 불법복제가 횡행하고 출시 일정의 연기 등과 같은 불안 요소가 가중되면서 LG소프트웨어는 게임 사업에 대한 투자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으로 선회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자체 개발하는 게임 ‘탈’과 아웃소싱 해오는 ‘스타크래프트’를 기점으로 게임 사업 지속에 대한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다행히 필자는 ‘스타크래프트’의 미래를 미리 내다봤다. ‘스타크래프트’는 8명이 동시에 플레이 할 수 있고 인터넷을 통한 ‘배틀넷’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PC게임의 대혁명을 가져올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하게 됐다. 3만장이면 ‘킬러 타이틀’로 손꼽혔던 당시 ‘스타크래프트’의 유통 정책을 비롯한 판매 전략을 만들어 비벤디 그룹에 제안했고, 3만장 이상의 매매 계약을 체결해 98년 4월부터 ‘스타크래프트’ 영업을 시작했다. 결과는 출시한 해에 11만 4000장이라는 판매고를 나타났다.

 ‘스타크래프트’의 성공에는 유통 영업을 통해 SW의 유통시스템을 선구축한 것도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음반을 비롯한 콘텐츠 사업 부문을 맡고 있던 필자는 게임 사업을 포함한 콘텐츠 사업 및 교육 사업을 이관하는 사업계획서를 회사에 제안하고 창업을 결정했다. 출시된 해 12만장 가까운 판매를 보였던 ‘스타크래프트’는 당시 시장에서 이미 ‘팔릴 만큼 다 팔렸다’라고 평가 받고 있었다.

 그 동안 일하며 만들어 온 유통 시스템과 신뢰, ‘스타크래프트’의 시장성을 믿고 ‘전화기’ 하나만 갖고도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는 강한 의지를 불태웠다. 그리고 바로 99년 1월 함께 일하던 팀원 7명과 지금의 ‘한빛소프트’를 설립하게 됐다.

 ymkim@hanbitsof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