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첫 번째 명함은 무역회사 명함이었다. 무역회사를 운영해보겠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무역회사를 차렸고, 96년도에는 백만달러 수출의 탑 포상을 받을 정도로 유망한 무역회사를 이끌게 됐다. 그리고 프라임벤처캐피탈 대표를 맡으면서 벤처기업이 가진 핵심 선도 기술의 사업화를 지원하는 인큐베이션을 진행하고 있었다.
나는 우리나라 대표 벤처기업인 한글과컴퓨터를 언제나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적자기업, 경영권 분쟁이라는 위기를 생각하면 평소 애착을 갖던 한컴을 위해 내가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2003년 2월 어느 날 밤, 나는 새벽 무렵까지 홀로 한컴의 현재 경영상황과 향후 비전을 담은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형님이신 프라임그룹 백종헌 회장님께 보고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IT분야 진출 계획을 가지고 있던 프라임그룹은 수차례의 정밀한 검토과정을 거쳐 ‘아래아한글’과 한글과컴퓨터를 한 식구로 맞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물론 당시 주변에서는 시장에서 떠도는 이야기처럼 “왜 이미 한물 간 벤처기업에 투자 하느냐?” “구원투수와 패전 처리용 투수는 다르다” “소프트웨어나 IT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한컴을 살릴 수 있겠느냐”는 등 반대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한컴의 구원투수로서의 나의 역할을 잘 알고 있었고 자신감도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나 역시 누군가 해야 할 한컴의 회생과 가치, 미래를 믿고 있던 한컴의 응원자였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2003년 여름, 사장으로 취임해 처음 출근해 맞이했던 회사의 분위기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한참동안 주인 없는 회사로 경영권 분쟁의 여파와 계속된 적자 운영으로 직원들이 지쳐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나는 취임식을 통해 직원들에게 약속했다. 회사가 정상화되고 이익이 실현되면 임직원들과 이익의 30%를 함께 공유하겠다고. 또한 나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몇 가지 조치를 단행했다. 먼저 사옥을 처분하고 벤처기업들이 많이 입주해있는 강변역 프라임센터로 회사를 이전했다. 많은 벤처기업들이 입주해 있는 이곳에서 한컴이 예전의 벤처다운 활기와 열정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한편 임직원들에게는 세계 100대 소프트웨어 회사로의 도약과 소프트웨어 지주회사라는 슬로건으로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4년여가 된 지금도 한컴의 슬로건은 이 때 이야기한 두 가지를 핵심목표로 매진해가고 있다. 직원들에게 구심점이 생긴 이유였을까? 내가 취임한 해인 2003년에는 4년 만에 경상수지가 흑자로 전환됐고, 새롭게 출시한 ‘한글과컴퓨터 오피스 2004’도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동안 잃었던 시장에서의 신뢰가 서서히 회복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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