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사람이 강을 만들었다

[열린마당]사람이 강을 만들었다

당초 30∼40명만 참석해도 많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9월 20일 북아프리카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에서 정보통신부가 주최하고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이 주관한 ‘한-리비아 IT 콘퍼런스’의 얘기다.

 그도 그럴 것이 사회주의 국가 리비아와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정보통신 분야에서 교류가 전혀 없었다. 또 얼마 전까지 철저한 쇄국정책의 틀 안에서 성장한 리비아 대학생들에게 우리나라의 선진 디지털 문명에 대한 풍문이 조금이나마 전달되었을 리 만무였다.

 게다가 인터넷 이용률 3.6%에 유선전화 가입 대기시간이 평균 1년인 나라에서 ‘IT 콘퍼런스’라는 것은 너무 생경한 경험이자 어쩌면 사치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자 예상 밖의 결과가 나왔다. 트리폴리 호텔에 마련된 행사장은 리비아 최고 명문대인 알 파타 대학생으로 넘쳐났다. 미리 준비한 좌석이 모자랄 정도로 100여명의 학생과 관련 전문가가 이날 행사장을 꽉 메웠다. 총인구 590만명에 정보통신학과가 오로지 단 한 곳만 있는 나라임을 감안할 때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청중들의 진지한 태도도 매우 고무적이었다. 이들은 우리나라의 IT 현황 및 정책에 대한 브리핑 영상자료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마치 입시를 앞둔 수험생처럼 강연자의 말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사실, 인터넷 사용이 지극히 제한적인 그들로서는 무선 초고속인터넷이 잘 이해되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한 물리학 교수마저도 무선이자 초고속이며 시속 100㎞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우리의 와이브로가 소개되자 연신 “놀랍다”고 혼잣말을 내뱉었다.

 공식 브리핑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되자 질문이 쏟아졌다. “어떻게 움직이는 동안에도 초고속인터넷이 가능한가” “TV 방송을 어떻게 휴대폰으로 볼 수 있나” “유비쿼터스가 도대체 무엇인가” “한국 정부에서 개도국에 지어주고 있는 정보접근센터(IAC)를 리비아에도 지어줄 수 있나” 등등.

 다른 질문도 계속 이어졌지만 다음 일정 때문에 중간에서 자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행사가 끝난 후 호텔을 나설 때 불어온 지중해의 바람은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우리 외교의 불모지 리비아에도 이제 ‘디지털 한류’가 일기 시작됐음을 알리는 바람이었기 때문이다.

 흔히 리비아하면 가장 먼저 카다피 대통령과 대수로 공사를 떠올린다. 사하라 사막을 관통하는 수로를 만드는 대공사는 우리에게나 리비아에나 다 같이 매우 인상적인 일이었다.

 특히 우리가 세계적 특허로 인정받는 고부가가치 기술이 별로 없었던 시절, 대수로 공사는 우리를 먹여 살릴 ‘달러벌이’의 하나로 대대적인 조명을 받았다.

 대수로 같은 토목공사야말로 산업사회·개발도상국 시절을 대표하는 우리의 먹을거리 종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시간이 흘렀고 지식정보사회가 됐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이제 우리나라는 지식정보사회를 이끄는 기술을 가진 선도국가가 됐다. 물론 대수로 같은 대단위 토목 및 건설공사 등도 여전히 중요하지만 주요 수출 품목은 정보통신 쪽으로 바톤 터치됐다.

 리비아의 대중적인 생수 이름은 ‘맨 메이드 리버(Man made river)’다. ‘인간이 강을 만들었다’는 의미다. 바로 대수로 공사로 인해 생겨날 수 있었던 상표다. 오아시스에서 대수로를 통해 옮겨진 물이다. 대수로가 아니었던들 이런 생수 이름은 생길 수 없었다.

 리비아에서 대수로 공사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이미지다. 아직까지 리비아에서 우리나라는 토목공사 및 건설을 잘하는 나라다. 그러나 이제 이런 이미지도 바뀌어야 한다. 토목공사도 잘하지만 IT는 더욱 놀라운 ‘디지털 원더랜드 코리아’로 이미지가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아프리카에서 넓힐 수 있다.

 자원부국이기 때문에 너무 중요하지만 우리와는 별 친교가 없던 불모의 리비아에서 이제 막 이런 이미지 전환 작업의 첫걸음을 뗀 셈이다.

◆손연기 한국정보문화진흥원장 ygson@kado.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