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칼럼]책 속에 길이 있음을…

 ‘이 책’을 읽어 보세요.

 야당 유력 대권주자로 불리는 ’빅3’가 야당 홈페이지에 추천도서를 소개했다. 한 사람은 희망을 찾기 위한 책을, 또 다른 이는 리더십에 관한 책을, 나머지 한 사람은 국민 소득을 높이는 데 길잡이가 되는 책을 추천했다.

 단풍이 선혈처럼 붉게 물들어 가는 이 가을에 이들의 책 추천은 신선한 느낌이다. 현 정국을 생각하면 다소 한가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북핵 사태와 한미 FTA 협상, 국정감사, 외교 라인의 잇단 사의표명, 신도시 후보지역의 집값 폭등 등 현안이 한둘이 아니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어지럽다.

 이런 판국에 책이나 읽자니. ‘지금 그럴 때인가’하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럴 때일수록 국민이 책 속에서 지혜를 찾아야 한다. 책 속에서 자아를 발견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흔히 인터넷을 정보의 바다요, 보고(寶庫)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책은 무엇인가. 지혜의 보고요, 인생의 저장소라고 할 수 있다. 책 속에는 인생의 온갖 모델이 들어 있다. 가난한 이, 부자, 권력자, 서민 등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삶이 책 속에 있다. 책 속의 삶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정의하고 궤도를 수정한다. 책읽기는 바로 자아발견의 수단이다. 소설가인 윤호영 선생은 “독서는 내 생(生)의 파악”이라고 말했다.

 예전에는 독서가 생활이었다. 신분상승의 필수였다. 조상들은 가문이 잘되려면 “집안에서 웃음소리가 나야 하고 책읽는 소리가 그치지 않아야 한다”고 믿었다. 집안에서 책읽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크게 꾸짖었다.

 조선시대 독서광이라면 중기 때 시인인 김득신을 들 수 있다. 그는 수재는 아니었지만 손에서 책을 평생 놓지 않았다고 전한다. 심지어 혼인날에도 밤새 책을 읽었다니 황당하기조차 하다. 그뿐이 아니다. 상을 당해 곡을 할 때도 곡소리에 맞춰 백이전을 읊었다는 일화가 있다. 이 정도라면 독서광이란 소리를 듣고도 남을 만하다. 그는 백이전을 11만3000번 읽었다고 한다. 이를 기념해 그는 서재 이름도 ‘억만재’라고 지었다. 그가 1만번 이상 읽은 책만 36권이나 된다고 한다. 현대인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독서량이다.

 요즘 우리의 독서량이 갈수록 줄고 있다. 신문도 잘 안 보는 세태다. 인터넷으로 필요한 내용만 검색해 읽는 일이 많다. 우리의 국민 1인당 연간독서량은 3권 미만이다. 미국은 11권 정도. 일본은 13권 정도라고 한다.

 15살이 될 때까지 이름조차 쓸 줄 몰랐던 링컨은 엄청난 독서를 통해 대통령이 됐다는 소리를 듣는다. 세종대왕도 책을 많이 읽어 눈병이 나기도 했다. 책을 읽는 것은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수많은 사람의 지혜와 삶의 방식을 만나는 일이다. 수많은 이가 괴롭고 힘든 현실을 책읽기를 통해 극복했다. 책 속에서 삶의 지혜를 얻고 해결책을 찾았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 앞에 수많은 난관이 닥쳐 와도 책을 읽는 사람이 많다면 지금의 시련을, 오늘의 아픔을 잘 넘길 수 있다. 인터넷 시대를 사는 우리지만 지식과 정보를 내면의 창고에 차곡 차곡 쌓고 싶다면 책을 읽어야 한다. 우리가 어떤 위기든 본질을 제대로 꿰뚫어 보지 못하면 재앙이 된다. 위기의 계절에, 선혈의 절기에, 빠름의 시대에, 내가 읽은 한 권의 책 속에 길이 있음을 잊지 말자.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현덕주간@전자신문, hd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