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살아 숨쉬는 IT](상)스포츠와의 만남

현장에서살아숨쉬는IT

SK와이번스 야구기록원들이 상대팀인 LG 투수의 구질을 분석하고 있다. 이 데이터들은 실시간 덕아웃에 전송돼 타자의 투수 공략 자료로 활용된다
SK와이번스 야구기록원들이 상대팀인 LG 투수의 구질을 분석하고 있다. 이 데이터들은 실시간 덕아웃에 전송돼 타자의 투수 공략 자료로 활용된다

 정보기술(IT)은 하나의 원소로 수많은 생활·산업·경제 속에서 제 역할을 하며 성장해왔다. IT가 없는 일상은 설명하기 힘들고 유비쿼터스 네트워크 사회로 진화되면서 IT는 구성체를 지탱하는 근원적 요소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IT를 기업의 전산실이나, 비즈니스적 도구로 생각하는 것은 1.0 버전 이전의 낙후된 관점이다. IT가 하나의 산업군을 넘어서 사회간접자본(SOC)이자 사회의 핵심 DNA가 된 셈이다. 본지 탐사기획팀은 △IT가 승부를 가르는 핵심 전략이 된 스포츠 △1970년대 일본국제협력단(JAICA)의 원조를 받아 시작된 한강 홍수통제소의 변신과 과학적 홍수예보 현황 △독립된 과학수사로 재무장하는 바다지킴이 해양경찰 등을 취재,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고 있는 IT를 직접 확인했다. 기사는 시나리오나 가상 현실이 아니며, 기자의 직접 현장 참여 및 동행취재로 서사식으로 재구성했다.

 지난 13일 LG트윈스와 기아 타이거스 간 17차전을 앞둔 서울 잠실구장. 원정팀인 3류 기아 응원석에는 오후 5시가 되자 골수 팬으로 보이는 관객이 응원도구를 들고 속속 입장했다. 입장객은 관객만이 아니었다. 유니폼을 입은 정체 불명의 5명도 함께 들어왔다. 선수라고 하긴 나이가 많아 보였다. 바로 경기 분석 요원이다. 이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속도측정기(스피드건)·노트북PC·캠코더 등 장비를 세팅했다.

 경기가 시작되자 분석 요원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투수의 공 구질과 구속, 타자 출루 상황 등 경기의 모든 것을 노트북PC에 깔린 경기 분석 솔루션 ‘퍼펙트 베이스볼’에 일일이 입력했다. 덕아웃도 덩달아 바빠졌다. 경기 데이터가 실시간 전송되고 있었던 것. 타격 코치는 타자에게 전송 데이터를 기반으로 투수 공략법을 설명했다. 첫 타순 헛방망이만 돌리던 기아 타자들은 점점 배트 중간에 공을 맞춰나갔다. 데이터가 경기 흐름을 바꾼 것이다.

 이 모습은 잠실 구장만의 풍경은 아니다. 지난 2002년 이후 국내 대부분 프로야구단은 경기 분석 시스템을 구축했다. 과거에도 엑셀 등에 입력된 전산데이터를 이용했지만 최근에는 전문 프로그램을 이용한 종합 분석이 대세다. 야구뿐만 아니라 축구·배구·농구 등 다른 구기 종목도 IT를 이용한 경기 분석이 한창이다. IT는 이제 스포츠에서도 거스를 수 없는 ‘장강(長江)’이 됐다.

 한국은 이제 도입 단계지만 미국·영국 등 스포츠 선진국에서 ‘스포츠IT’는 일반 명사가 된 지 오래다. 세계 최강 프로 축구 리그 ‘프리미어 리그’를 보유하고 있는 영국은 IT를 빼곤 논할 수 없을 정도다. 지난 90년대 중반 프리미어 팀은 스포츠 IT시장에서 한 획을 그었다. 비디오 분석이 대세였던 전력 분석 시장에 선수의 움직임을 계량화하는 솔루션을 도입한 것이다. 횡·백패스를 코드화하고 경기 중 선수의 움직임과 패스 패턴을 통계로 산출했다.

 특히 ‘위치-선수-시간-기술-결과’를 모두 수치화해 이길 때 선수 움직임과 골이 가장 잘 들어가는 골든 타임을 산출, 경기에 활용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느슨하던 경기는 빨라졌고 90분 중 50분 정도만 뛰던 선수는 그라운드를 70분 이상 쉴 새 없이 돌아다녔다.

 김주학 명지대학교 교수는 “이 솔루션은 스카이스포츠 등 현지 스포츠 전문 방송에도 도입돼 경기에 대한 일반인의 이해도도 높아졌다”며 “철저한 상대팀 분석을 바탕으로 한 경기는 오히려 변칙적 경기 운영을 확산시켜 경기의 재미가 배가 됐다”고 지적했다. 영국에는 웨일스 대학 등 경기 분석만을 전문으로 하는 대학도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에도 90년대 후반 IT분석 기술이 도입됐다.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는 말이 있듯 기술은 투구 분석에 주로 사용됐다. 미국 솔루션의 강점은 ‘비디오와 데이터’의 결합. 슬라이더·커브 등 모든 투수의 구질이 데이터로 만들어지고 여기에 상황을 담은 비디오까지 붙였다. 이 데이터에는 특정 상황에서 투수가 어떤 공을 승부구로 사용하느냐에 대한 정보까지 담겼다. 김봉준 스포츠투아이 부장은 “한국 출신 메이저리거가 움직임을 간파당한 것도 이런 데이터 분석 때문이었다”며 “수십조원의 돈이 오가는 리그인만큼 경기 분석 솔루션도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탐사기획팀=한정훈기자@전자신문, existe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