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IT이슈 진단]제프 베조스가 그리는 아마존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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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프 베조스 아마존 회장이 전자책 리더 ‘킨들’을 선보이고 있다.
< 제프 베조스 아마존 회장이 전자책 리더 ‘킨들’을 선보이고 있다.>

 어릴 적 별명은 ‘소문난 신동’. 부모는 일찌감치 그를 영재학교로 이끌었다. 그가 프린스턴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뒤 월가 펀드 매니저로 활약한 것은 잠깐이었다. 그의 나이 30세였던 94년, 연봉 100만달러 직장을 박차고 설립한 회사는 1세대 닷컴의 대명사가 된다. 바로 ‘아마존의 사나이’ 제프 베조스 이야기다.

당신이 아마존을 여전히 세계 최대의 온라인 서점으로 알고 있다면, 아마존닷컴 CEO 겸 사장, 이사회 의장인 베조스는 못내 서운해 할지도 모르겠다. 아마존은 전자기기·구두·장난감부터 자동차 부품까지 취급, 월마트를 위협하는 온라인 쇼핑몰로 거침없이 성장 중인 것은 물론 별로 상관도 없어보이는 검색 최강자 구글을 위협하는 존재로도 심심찮게 거론된다.

닷컴 창업자로선 드물게 14년째 현역 경영자인 베조스는 웹의 진화를 굳게 믿으며 위험한 베팅도 마다하지 않는다. 전자북 리더 ‘킨들(kindle)’을 출시하고 웹 서비스 개발에 거금을 투자했다. 마치 “내가 여기서 닷컴 장사를 끝내겠냐”고 호기를 부리는 것처럼 보인다. 천재는 그렇게 ‘아마존 2.0’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유선에서 무선까지 ‘킨들’=킨들은 베조스가 책에 건 두번째 승부수다. 이번엔 종이책이 아니라, 전자책이다. 소니 등 숱한 업체가 수요 창출에 나섰지만, 아직 성공하지 못했던 분야기도 하다. 3년 개발 끝에 세상에 나온 킨들은 화려한 스펙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데 일단 성공했다. 무게 292g, 저장 용량 책 200권, 햇빛 아래에서도 편안한 6인치 화면, 전자사전·MP3플레이어에 책갈피와 메모까지 다양한 기능을 제공한다. 비싼 가격(399달러)과 디자인에 대한 불만 속에서도 킨들은 출시 즉시 매진 사례를 기록했다.

그러나, 킨들에서 아마존 2.0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것은 단순히 외장 때문은 아니다. 비즈니스 모델 혁신 등 보이지 않는 이유가 더 크다. 베조스가 킨들을 두고 “서적 업계의 ‘아이팟’이 될 것”이라고 말한 대목에선 그의 야심이 잘 나타난다. 아이팟과 아이튠스로 디지털 음악 질서를 바꿨던 애플 성공을 전자책 분야에서도 재현해보겠다는 것이다.

베조스는 전자책 다운로드 방법부터 완전히 바꿨다. 킨들은 휴대폰 전화망(EVDO)에 접속, 언제 어디서나 책을 내려받을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PC와 싱크하거나 무선랜을 찾아 이리저리 헤멜 필요가 없다. 휴대전화망 접속 비용은 아마존이 낸다. 이를 위해 아마존은 스프린트넥스텔과 전략적 제휴도 맺었다. 외신들도 ‘PC와 완전히 결별한 첫번째 전자책 리더’라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콘텐츠 양적 측면에서도 킨들은 경쟁업체를 압도한다. 9만종에 달하는 전자책을 9.99달러에 볼 수 있고 뉴욕타임스 등 신문과 잡지, 온라인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도 즐길 수 있다. 베조프가 킨들을 통해 아마존의 무대를 자연스럽게 무선까지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유통 기업이라고? 기술 개발에 천문학적인 투자=베조스는 닷컴 기업의 핵심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기술력이라고 굳건히 믿고 있는 리더 중에 한 사람이다. 데이터베이스(DB)부터 검색에 이르기까지 웹과 관련된 기술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99년 웹사이트 정보 제공 업체 알렉스를 인수했고 2004년 검색 자회사 A9도 설립했다. 무모해 보이는 기술 투자에 대한 비판은 2006년 최고조에 달했다.

지난해 11월 ‘제프 베조스의 위험한 승부수’라는 제목의 비즈니스위크 톱기사는 “측정가능한 숫자를 좋아했던 합리적인 베조스는 어디 가고 기술과 콘텐츠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있다”며 월가의 우려를 담았다. 아마존은 지난해 연간 순이익 1억8000달러의 3배에 이르는 4억8500만 달러를 기술과 콘텐츠에 투자했고, 월가는 그때마다 “베조스가 온라인 서점 사업에만 신경쓰길 바란다”고 꼬집었다. 2006년 아마존의 영업 마진은 4.1%로 오프라인 업체인 월마트의 5.9%, 반스앤노블의 5.4%보다 낮았으니, 월가의 지적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서비스들은 ‘우리가 아마존에 대해 모르는 거의 모든 것들’이다. 개발자들을 위한 스토리지 서비스 ‘S3(Simple Storage Service)’, 개인들에게 가상 서버를 나눠주는 서비스 ‘EC2(Elastic Compute Cloud)’ 등 아마존은 10여 가지 웹서비스와 유틸리티 컴퓨팅 서비스를 선보였다. 베조스는 “이정도 데이터센터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10년 이상의 세월과 20억달러가 넘는 비용을 썼다”면서 “이제 소규모 회사나 개인들이 아마존에서 필요한 다양한 IT 서비스와 검색 엔진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유통에서 플랫폼 기업으로, 모든 길은 아마존으로 통한다=웹 진화를 내다보는 베조스의 안목과 과감한 행보는 2002년 웹서비스 공개에서 잘 나타난다. 아마존은 누구나 아마존의 상품정보·고객사용기·추천상품 정보·장바구니·결제 등을 이용해 새로운 사이트를 만들 수 있도록 응용프로그램환경(API)을 공개했다. 이후 아마존의 특정 상품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제휴 사이트가 급증했다. 아마존 웹서비스는 이제 14만명 이상의 개발자와 협력업체들이 참여한다. 제휴업체가 판매하는 물량은 아마존 전체 매출의 20%에 달할 정도다. 아마존은 제휴 사이트에서 15%의 수수료도 챙기며 거대한 아마존 경제권을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제 베조스는 수년 동안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은 컴퓨팅 서비스와 전자북 리더 킨들에서 차세대 아마존을 보여주겠다고 말한다. 그의 전략대로라면, 기업과 개인들은 아마존의 컴퓨팅 기술과 저장 공간을 이용해 새로운 비즈니스를 펼치고 킨들을 통해 전자북은 물론 음악·동영상 등 다른 디지털 콘텐츠까지 구매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지금 아마존 웹 서비스에 대한 월가의 시선도 달라지고 있다. 지틸 파텔 도이체방크 애널리스트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2009년부터 웹서비스가 아마존 매출의 상당 부문을 차지하는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7년 말 현재 아마존의 주가는 이미 99년 닷컴 버블 때를 연상시킬 정도로 고공행진하고 있다. 1년 전 30달러에 불과했던 주가는 현재 100달러를 돌파했다. 견조한 매출 증가와 신성장 동력에 대한 기대감 덕분이다.

서적 유통에서 전자상거래로 변신하며 월마트의 경쟁자가 된 것은 아마존 1.0 이야기다. 웹서비스와 콘텐츠 유통까지 모든 길이 아마존으로 연결되는 플랫폼 기업으로의 변신, 그것이 제프 베조스 CEO가 그리는 아마존 2.0 이다.

류현정기자@전자신문, dreams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