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강국코리아, 다시 시작이다] (9)지자체 자가망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미국 공공기관 자가망 실패의 유형과 사례

 지방자치단체 및 공공기관 등이 기존 통신사업자의 전기통신설비를 활용하는 대신 자체 설비를 구축하는 ‘자가망’ 문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바로 지난 7월 7일에 일어났던 대규모 분산서비스거부(DDoS) 공격 때문이다. 단순히 국가 정보통신 인프라 중복 투자나 자원 낭비, 또 국가 통신 지도의 ‘난개발’ 우려를 넘어서 자가망이 국가 통신 재난 사태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불거졌다.

 자가망은 일부 구역에서 자체적으로, 산발적으로 가설되기 때문에 비상 사태 발생 시 효과적인 대응이 어렵다. 보안 등 안전 문제에서도 일률적인 대응 체계 구축이 어렵다는 평가다. 특히 자가망 관련 사무가 지방에 이양되면 자가망의 체계적인 관리 등은 완전히 불가능해진다.

 전기통신기본법 15조에서는 ‘자가통신설비(자가망)는 공중통신설비를 이용해 설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지역에서는 설치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즉 이미 통신설비가 구축된 곳이 아니라 통신설비가 구축되지 않은 통신 ‘구멍’에 대체재로서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설치 목적은 전기통신기본법 21조에 ‘자가전기통신설비(자가망)를 설치한 자는 그 설비를 이용해 통신을 매개하거나 설치 목적에 반해 운용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한 후 치안유지 또는 긴급한 재해구조를 위해서만 목적 외에 사용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이렇듯 법률적으로 자가망의 보완재적 기능, 목적 외 사용 금지 등이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만 지난해 ‘유비쿼터스도시의 건설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u시티를 표방하는 각 신도시가 자가망 구축에 본격 나서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자가망 구축은 국가 정보통신 인프라의 중복투자 및 자원 낭비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이견이 없다. 각 지자체가 무분별하게 자가통신설비를 구축하게 되면 기간통신사업자들이 이미 투자한 망은 유휴설비로 전락해 막대한 중복 투자와 국가 자원 낭비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통신사업자의 망이 거의 완벽하게 전국을 망라하고 있는 상태에서 공공기관의 자가망은 사업자망과 중첩될 수밖에 없다.

 또 자가망 구축은 이미 구축된 망을 임차하는 것보다 비용 역시 많이 소요된다. 실제로 현재 지자체 자가망이 구축되고 있는 화성-동탄지역은 자가망 구축 시 임대망 구축 시보다 10년간 약 24억원(현재 가치 기준 28억원)의 예산이 추가 소요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함께 공공기관은 민간기업과 달리 독점적 지위가 보장되므로 정확한 비용수익 분석에 근거하지 않고 방만한 의사결정으로 자원배분의 비효율성 초래할 것이 불보듯 뻔하다. 이런 지자체와 달리 기간통신사업자들은 망을 공동 구축하는 등 비용 절감에도 앞장서고 있다. 실제 화성-동탄, 부산, 고촌 등 54개 택지 개발지역에서 공동구축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것은 지난달 일어난 DDoS 공격과 같은 국가 재앙에 대응할 수 없다는 점이다. DDoS 공격은 그 특성상 사전에 공격을 감지하기가 어려워 추후 대응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자체 자가망 구축이 활성화되면 이에 대한 신속한 대응이 불가능하다. 국가 비상사태시 적시성 확보가 어렵다는 것이다.

 업계 보안 전문가는 “7·7 대란에서 정부가 통신사업자들과 공조 아래 숙주 사이트를 차단하는 등 일련의 조치를 취할 수 있었던 것은 단일 기관이 관련 업무를 지휘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지자체들이 전기통신설비를 자체적으로 구축하고 또 이를 중앙정부에 신고조차 하지 않는다면 이런 국가 비상 사태에 대응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 전시 및 비상재해 때도 마찬가지다. 자가망을 비상통신망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기간통신사업자와 자가망이 접속돼야 하지만 개별 지자체가 다수 기간통신사업자와 지역적 대응, 통신망별 특수성, 협조체계의 한계 등으로 통신재난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국가 통신망 고도화 정책에도 막대한 악영향을 미친다. 통신사업자망 임차 사용은 사업자의 투자 여력 상승으로 통신망 고도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유발하는 긍정적인 효과 기대된다. 그러나 자가망 확산은 통신사업자의 수익성 악화를 초래하고 초고속인터넷망, BcN, 와이브로 등에 막대한 시설 투자를 해온 통신사업자의 투자의욕 상실로 이어져 국가적 차원의 통신망 고도화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된다.

 이와 함께 국가 통신정책에 혼선이 올 것이라는 점은 오래 전부터 제기돼 오던 문제다. 이 문제는 자가망 관련 업무의 지방 이양이 되면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지자체가 자가망의 관리감독기관이 되면 전국 규모의 대기업, 지자체 등에서 무분별하게 자가망을 구축하고자 할 때 이를 제어할 수 없고 국가정책에 반하는 혼선이 초래될 것으로 우려된다.

 이미 정부는 지난 1990년대 후반 공공기관의 무차별적인 자가통신망 구축과 통신사업 수행에 따른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 기관이 독립법인 형태로 기간통신사업 허가를 받고 통신사업을 하도록 정책을 추진했다. 한국전력의 파워콤, 한국도로공사의 드림라인, 송유관공사의 EPN 등이 그 예다.

 ◆미국과 유럽의 자가망

 미국은 낮은 초고속인터넷 서비스 보급률과 높은 이용요금 때문에 공공기관 등이 사업자망을 보완하기 위해 자가망을 이용한 통신서비스 제공을 시도하고 있지만 대부분 실패로 마감했다.

 미국에서 자가망 사업의 대부분은 수익성 악화로 고전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은 600여개의 공공기관이 초고속인터넷서비스를 제공 중이지만 치열한 경쟁, 예상을 초과하는 구축 및 운영비 발생으로 사업 위기를 맞고 있다.

 미국 소비자연합에서 약 350개의 자가초고속망을 조사한 결과 저렴한 가격, 인터넷 보급 확대, 원금회수 및 이윤추구라는 자가망 구축 목적 중 단 한 가지도 이루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미국 각지에서는 자가망 구축에 따른 역효과들이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콩코드시의 자가망 컨설팅 용역에 의하면 자가망 실패 확률이 60%로 집계됐다. 타코마시는 자가망 사업을 시작해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고 2년 동안 2300만달러라는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또 레바논시는 광 네트워크 구축에 500만달러를 예상했지만 실제로 900만달러가 소요됐으며 운용 손실을 메우기 위해서는 추가로 1480만달러가 필요하게 됐다.

 이런 문제점들이 드러남에 따라 당초 계획과 달리 공공부문의 비즈니스 마인드 부재, 수익성 악화 및 운용 비용 조달 어려움 등의 이유로 자가망 구축·운용을 포기하는 사례 또한 증가하고 있다.

 시카고는 지난 2007년 자가망 계획을 철회한 바 있다. 어스링크는 필라델피아 네트워크 철거를 발표했고 캘리포니아 칼넷은 1998년 2000만달러의 부채를 지고 매각, 조지아주 마레이타시는 2300만 달러의 손실을 내고 매각됐다.

 이런 실패의 피해가 고스란히 시민의 부담으로 돌아간다는 점이 문제다. 예산이 모자라게 되면서 세금을 납부하는 시민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지울 수밖에 없게 된다. 오리건주, 애시랜드시 등은 과다 비용 보전을 위해 외부 차입을 했다. 또 브리엔트리시는 추가비용을 요금인상으로써 소비자에게 전가하기도 했다.

 이런 문제점들을 인식한 일부 주에서는 지자체의 통신서비스 제공을 법률로 제한하고 있다. 현재 23개주에서는 지방정부의 통신서비스 제공을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 중이고 이미 이중 20개주가 규제 입법을 완료했다. 또 미국 대법원은 주 정부가 시 등 지자체의 통신서비스 제공을 금지·제한할 수 있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유럽연합(EU)에서도 비도시 지역 등 통신사업자가 초고속서비스 제공을 위한 기반설비를 구축하지 못한 지역을 중심으로 공공기관의 자가망 구축을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중복 투자와 자원 낭비를 막기 위해 통신사업자가 진입해 있는 지역은 공공자금에 의한 시장 왜곡을 방지하는 ‘주 원조법(State aidrules)’에 위반되는 때에 공공기관의 자가망 구축을 규제하고 있다. 민간통신사업자에게 불공정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나 공공자금이 민간의 시장실패를 개선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때에 공공자금 지원을 규제한다. EU의 주 원조법 부적합 판단으로 아일랜드 더블린 시의회는 무료 와이파이 제공계획을 취소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