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 GAME] (2부-1)거꾸로 돌아가는 `규제 시계`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사행성 근절 관련 규제

 지난 8월 대한민국 게임 산업의 뇌관을 건드릴 만한 사안이 발생했다. 이경재 한나라당 의원이 사행성 방지와 청소년 보호를 위해 이른바 ‘간접충전금지법’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것. 게임 산업을 약간이라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게임 비즈니스를 송두리째 흔드는 이 법안에 아연실색했다.

 웹보드 게임 이용자들이 아바타 등을 구입할 때 마일리지 개념으로 사이버 머니를 덤으로 제공받는 ‘간접 충전’은 연간 수천억원대 규모로 주요 게임 기업들의 캐시카우이기 때문이다. 정작 문제의 핵심은 사행성 판단의 기준이 되는 금전적 보상, 즉 환전을 게임 기업들이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게임 포털 곳곳에 독버섯처럼 퍼져 있는 불법 게임머니 환전상들이 주범인데도 불구하고 규제의 칼날을 게임 기업에 들이대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게다가 청소년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주 대상이 되는 고스톱·포커 등 웹보드 게임은 19세 이용불가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09년 대한민국 게임산업의 규제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시장 규모 6조원, 수출액 10억달러로 성장한 게임 산업의 노고를 앞다퉈 ‘치하’하면서도 지난 2006년 ‘바다이야기’ 사태 이후 사행성 근절과 청소년 보호라는 미명하에 명분과 실리없는 어거지 규제안을 남발하고 있다.

 올해 발의된 법안만 해도 다수다. 청소년의 심야 게임시간을 제한하는 이른바 ‘셧다운제’가 청소년보호법 일부 개정안으로 발의됐고 ‘운영방식의 사행성 조장 우려’가 있다는 판단만으로 게임 등급 심의를 반려할 수 있는 ‘등급 심의 반려 제도’가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에 포함됐다. 지난 4월에는 게임물등급위원회가 일괄 13만원을 받던 등급 심의수수료를 최대 8배나 올려 중소개발사를 울리고 있다. 이경재 법안은 이 같은 규제안의 백미다. 간접충전이라는 게임 비즈니스 모델을 전면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신문이 중국·일본·미국·독일 4개국을 취재한 결과, 중국 마작, 일본 빠찡코 등도 각 나라에서 합법적인 서비스로 인정받고 있다. 과거 영상물등급위원회와 게임 업계가 마련한 절충안인 간접충전 방식은 이미 해외에서도 보편적인 비즈니스로 자리잡았지만 유독 우리나라만 과거로 달려가고 있는 셈이다. 정기국회를 앞두고 인기에 영합하려는 국회의원들의 한건주의도 한 몫하고 있다. 황성기 한양대 법대 교수는 “사행성 구성 요소 중 핵심이 게임 결과에 대한 금전적 보상이라는 점에서 규제나 정책도 금전적 보상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이런 관점에서 잘못된 규제 접근”이라고 지적했다.

 게임법 개정안의 ‘등급심의 반려제도’ 역시 독소조항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등급 심의시 게임 내용보다는 게임 운영방식의 사행성을 문제삼아 아예 심의조차 내주지 않는 조항이다. 아케이드 업계에서는 제2의 바다이야기 사태를 우려해 조금이라도 문제가 될 만한 아케이드 게임은 아예 등급을 내주지 않겠다는 의도라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바다이야기 사태 이전에 3조원이 넘었다가 2007년 기준 870억원으로 쪼그라든 아케이드 업체들은 이미 녹다운 수준이다. 유럽·미국·일본의 아케이드 게임 시장이 여전히 건재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청소년보호법 일부개정안으로 발의된 ‘셧다운제’도 가정과 부모의 영역에 국가가 과도하게 개입한 측면이 있다. 아이들의 게임 시간은 본인 스스로와 부모가 해결해야 할 몫인데도 국가가 나서 강제로 시간을 제어한다는 점에서 선택의 자유 침해는 물론 가정의 기능을 오히려 축소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일본에서 만난 반다이남코의 한 임원은 “같은 논리라면 젊은이들이 심야 시간에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것도 규제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온라인게임에서 시간 과금을 한다면 게임기업의 비즈니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텐데 이게 국가적으로 이익인지 아닌지 곱씹어 봐야 한다”고 의아해했다.

 문화부의 한 관계자 역시 “셧다운제는 가정의 역할에 국가가 개입한다는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장동준 차장(팀장) djjang@etnews.co.kr, 김인순·한세희·김민수·이수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