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IT칼럼 _ CIO, 미래를 잡아라
김성근 중앙대학교 교수(CIO포럼 대표간사)
좀처럼 보기 힘든 기사가 최근 눈에 들어왔다. ‘GM 재무출신들의 몰락’에 관한 기사였다. GM의 노른자위 직위를 독차지해 왔던 재무본부 출신 경영자들이 현직에서 경질되거나 한직으로 전출되는 사례를 분석한 기사이다. 이들 대신 엔지니어링·디자인·현장 출신이 속속 중용되고 있다고 한다. 눈앞의 재무성과만 강조하는 재무출신 경영진으로는 성장 동력을 손상시킬 뿐, 위기 극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분석이다.
현재와 미래, 어디에 무게중심을 두어야 할까? 실제 CEO는 이 두 가지 모두를 항상 머리에 담아두고 있다. 오늘 같은 위기에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미래의 성장 동력을 키우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하는 법이다. 비중을 어디에 조금 더 두느냐에 따라 기업 경영은 크게 달라진다.
나라에 따라 CEO가 어디에 비중을 두느냐는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인다. 미국 CEO에 비해 우리나라 CEO가 현재보다 미래에 더 비중을 두는 경향이 있다. 하루하루의 주식시세에 일희일비하는 대신 기업의 근원적 변환을 위해 보다 과감한 투자를 모색하는 편이다. IT시스템에 대한 투자만 봐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국내 많은 금융, 전자, 서비스 기업들이 ‘차세대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업무 및 정보 인프라를 근원적으로 개편해왔다. 외국 기업들은 대부분 소극적으로 임하고 있는데 말이다. 최근에는 가트너도 이런 한국 기업의 IT시스템 개편 노력을 높이 평가하기 시작했다.
미래에 대한 투자는 결과로 나타난다. 위기 상황에서도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신제품으로 세계 시장을 개척해가는 한국 기업의 도전이 여기저기 들려온다. 이게 모여 국가경쟁력으로 이어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제통화기금(IMF) 등도 이번 국제금융 위기를 가장 먼저 극복할 국가로 한국을 꼽지 않았던가? 실제 수치도 그걸 말해주고 있다. 이 모두가 외국에 비해 훨씬 더 미래지향적인 우리 CEO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하겠다.
이런 국내 CEO들이 CIO들을 어떻게 여기고 있을까? 오늘의 업무수행에 있어 필요한 역할로 볼까. 아니면 미래의 기업 경쟁력과 성장에 필요한 역할로 볼까. 아마도 상당수는 전자로 정의하고 있을 것 같다. IT는 일상적 업무수행에 어쩔 수 없이 활용되어야 하는 도구로만 이해한다.
IT가 오늘의 문제 해결에 필요한 역할뿐이라면 CIO의 미래는 밝지 못하다. CEO 머릿속에 IT의 비용(cost)을 어떻게 하면 줄여나갈 수 있을까가 늘 맴돌고 있을지 모른다. 새로운 기술의 잠재력 또는 IT의 전략적 활용 같은 이야기는 그들에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IT의 잠재력과 미래 방향에 대해 CIO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필요는 더욱 더 없다.
어떻게 하면 CEO의 ‘미래’라는 키워드에 접목할 수 있을까. CEO라고 해서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을까. 제품, 시장, 고객의 미래 변화를 구체적으로 알아내는 것은 CEO에게도 힘든 일이다. 그들이 미래에 대해 관심 갖는 부분은 ‘어떤 상황에서든 적절히 신속하게 대응하는 능력을 갖고 있느냐’이다. 이 신속대응력(agility) 이야말로 CEO의 미래 화두에 접목할 수 있는 연결고리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 기업을 신속대응력 있게 변환시킬 수 있을까. 이 질문으로 CEO에 다가서야 한다. 어떻게 가능한가 하고 물어오면 깔끔한 아이디어로 그들의 관심을 끌어내야 한다.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방안은 기업의 가장 일상적이자 주요한 업무를 디지털화하여 안정적이고 예측가능한 수준으로 수행할 수 있게 해주고 경영진은 일상적 업무보다 더 핵심적이고 혁신에 필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즉 영업, 생산, 물류에 이르는 업무는 디지털로 실행되어도 문제없도록 하고 경영진은 고객과 시장의 변화를 현장에서 일찍 감지하고 이에 대응한 신제품의 개발 및 디자인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혹시 이제까지의 IT에 대한 선입관으로 단번에 받아들일 수 없을지 모른다. ‘한번 구축된 IT는 마치 화석처럼 변경과 보완하기 도 힘들었는데 어찌 IT가 기업의 신속대응력을 키울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잘못 구축된 IT는 기업을 꼼짝달싹 못하게 하지만 잘 구축된 IT는 기업의 민첩한 변화를 가능하게도 한다는 것을 이해시켜 나가야 한다. 이게 바로 IT의 본질이다.
CIO들은 누구보다 미래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CEO와 함께 일하는 행운을 타고 났다. 이제 남은 일은 그들 CEO의 미래 화두를 잡느냐 못 잡느냐이다. CIO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GM 사례처럼 눈 앞에 보이는 단기 쪽에 서게 될 것인지 미래 성장 동력을 위한 장기 쪽에 서게 될 것인지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이 시점은 머지 않아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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