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보는 세상] 일상만화 `몹쓸년`과 `염소의 맛`

‘뿌우우우우’ 부부젤라 소리가 가득한 6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저 먼 나라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열리는 월드컵 축구 소식은 한반도에 사는 모든 이들의 일상에 공평하게 간섭한다. 축구 경기를 보고, 그에 대한 뉴스를 듣고 있으면 한반도에 사는 모든 이들이 균등한 일상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개인의 일상은 그렇게 공평하지도, 균등하지도 않다. 각각 다른 결의 삶을 살아간다. 동양과 서양의 젊은 작가들은 그런 세밀한 결을 지닌 일상에 주목했고, 비평자들은 이를 일상만화라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소소한 일상만화를 그려 주목받은 작가로 김수박을 꼽을 수 있다. ‘사람의 곳으로부터’(2004), ‘아날로그맨’(2006), ‘오늘까지만 사랑해’(2008)가 있다. 김수박은 주류 만화가 관심을 갖지 않았던 지극히 평범한 개인의 삶과 감성을 담아냈다. 감히 서사로 편입되지 못했던 개인의 일상은 김수박의 만화에 ‘얄팍썰기’로 가공되어 들어갔다. 김수박이 그린 (내) 일상은 멋지게 조리된 랍스터나 두툼한 등심스테이크하고는 아무런 상관없는 접시 옆에 장식된 얇게 썰린 오이같았다. ‘열아홉’(2007)의 앙꼬는 주변부의 정서를 담아냈다. 공간적으로도, 세대적으로, 계급적으로 주변부에 속해있는 여고생의 일상은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충격을 준다. 마영신의 ‘뭐 없나?’(2008)도 흔히 말하는 성공과 거리가 먼 젊은 청춘의 일상을 담아냈다. ‘88만원 세대’라는 수사가 주는 충격만큼이나 마영신의 뭐 없나?가 주는 충격도 만만치 않다. 이처럼 일상만화를 그린 젊은 작가들은 자신이 속한 계급의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2010년 두 권의 일상만화가 출간됐다. 이런 작품들은 보통 아무 소문 없이, 조용히, 그저 누군가의 일상처럼 다가온다. 김성희의 ‘몹쓸년’은 지난 5월에 출간된 따끈한 책이다. 흔히 서른이 넘은 여성들이라고 하면 명품백을 들고 스타벅스에 앉아 커피를 홀짝 거리는 모습을 떠올린다. 도회적 쉬크함 아님 ‘섹스 앤 더 시티’? 어디 삶이 그러던가. 격렬한 사랑이야 살아가는 동안 한두 번쯤 오겠지만 그 나머지 일상은 담담하고 지겨울 뿐이다. 김성희는 몹쓸년에서 가공되지 않은 30대 여성의 날 것 그대로의 삶을 보여준다. 서른에 맞이한 내 친구의 결혼식에서 시작된 이 만화는 마치 에드몽 보두앵의 만화처럼 세상을 흑백으로 바꾸는 강렬한 붓 터치를 선보인다. 이야기가 시작하자 마자 그 다음 페이지에 엄마와 화자의 긴장이 시작된다. 이렇게 시작된 만화는 대략 시간 순서대로 전개되지만, 스타일의 일관성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스타일에 작가가 흔들린 것인지 모르겠지만 큰 흐름에서 한 이야기를 각각 다른 스타일로 보는 맛도 나쁘지 않다. 펜과 붓이라는 원초적 재료를 사용해 담아낸 ‘그녀’의 일상은 가공의 픽션으로 읽히지 않고, 바로 그녀의 일상으로 다가온다. 칸 안에서도 주인공은 정면을 응시하지 않지만, 결국 그 시선은 돌고 돌아 나에게 온다. 그렇게 다가온 시선은 내 귓전에서 한 마디를 흘린다. “사랑하고 싶다. 혼자이고 싶지 않아.”

지난 3월에 출간된 바스티앙 비베스의 ‘염소의 맛’은 프랑스에서 온 일상만화다. 요약하면, 세계에서 제일 리얼한 수영만화. 스포츠 만화가 아니라 수영만화다. 척추옆굽음증에 걸린 소년이 물리치료사에게 ‘수영’을 하라는 권유를 받는다. 혼자 가기 싫어 친구와 함께 간 풀장. 소년은 그곳에서 멋진 포즈로 수영하는 소녀를 만난다. 소년은 소녀에게 반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그리고 소년은 소녀를 만나기 위해 열심히 풀장을 찾아 수영을 한다. 이게 다다. 그런데 이 만화를 보면서 감탄해 마지 않았던 것은 바로 수영이다. 얼마 전부터 일주일에 세 번 동네 수영장에서 수영강습을 받는 초보자가 보기에도, 바스티앙 비베스가 그린 수영장면은 100% 진짜다. 복장, 움직임은 물론 물 안에 잠긴 인체 묘사까지. 이처럼 세부의 진실이 살아있는 염소의 맛은 사실성에 기초해 아무 것도 아닌 만남을, 청춘의 한 페이지로 불러낸다. 만화와 일상이 만나는 지점의 아주 세밀한 결을 지닌 일상만화. 부부젤라 소리가, 우리를 가상의 세계로 인도하는 6월에 읽어보면 좋을 듯 하다.

박인하 만화평론가·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 교수 enterani@c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