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통신시장] <상>사라진 `자율`-통신료 인하 `발없는 말`만 떠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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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통행식 정책 발표로 혼란만 가중

 통신시장이 대혼란에 빠졌다. 사업자는 돌발 이슈에 대응하느라 신성장동력 발굴에 신경쓸 여력이 없다. 가입자는 언제 서비스와 요금제도가 바뀔지 몰라 항상 불안하다. 정부와 국회는 이에 아랑곳없이 실체 없는 메시지를 던지며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소모적인 논란을 되풀이하며 산업-서비스-정책 모두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현 통신시장의 문제점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편집자 주>

 

 지난 2월 정부 과천청사에서 열린 경제정책조정회의.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통신비를 낮추는 것이 서민 생계비 부담을 줄이는 데 중요하다”며 통신요금 인가제 폐지 등 제도 개선 방안 마련을 주문했다.

 갑작스런 윤 장관의 발표에 이해당사자인 통신사업자는 당황스러워했다. 인가제가 사실상 요금 인상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업계는 하루 종일 정확한 발언 의도를 파악하는데 매달렸다.

 한 달 뒤에는 국회에서 통신요금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여야 의원은 가계비에서 차지하는 통신비 비중이 높다며 통신요금 인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심재철 의원(한나라당)은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로 통화품질이 떨어진다”며 해당 요금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시중 방통위원장 역시 이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추진계획과 협의 없이 쏟아져 나온 이들 메시지는 결국 이동통신 가입자의 혼란을 야기했다.

 최근엔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가 마치 당장이라도 폐지될 것처럼 소문이 퍼지면서 사용자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한 통신사는 공식 트위터에서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 폐지 또는 축소를 검토하는 바 없다”며 직접 진화에 나서야 했다.

 이 같은 논란 모두 통신시장에서 업계의 자율성은 사라지고 정부 주도의 일방통행식 정책 발표가 이어지면서 비롯됐다.

 이마저도 이동통신재판매(MVNO), 제4이동통신 등 근원적인 시장 환경 개선보다는 단순히 ‘요금을 인하해야 한다’는 구호에 집중되면서 혼선만 부추겼다. ‘결과’가 먼저 나오고 이를 구현하는 ‘과정’은 뒤에 나오는 역설적인 상황이 연출됐다.

 이로 인해 통신사업자는 신성장동력 발굴, 융합서비스 개발 등 생산적인 활동보다는 정부와 국회의 지적에 대응논리를 마련하느라 진을 뺀다.

 이동통신 가입자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이들은 ‘통신사업자에게 터무니없이 비싼 요금을 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 쓰고 있는 서비스 혜택을 갑자기 빼앗기지 않을까’라는 의구심과 불안감을 갖고 지내야 한다. 이동통신 5000만, 스마트폰 1000만 가입자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걱정거리를 안겨준 셈이다.

 

 <이동통신 서비스 관련 말말말>

 “통신비를 낮추는 것이 서민 생계비 부담을 줄이는 데 중요하지만, 통신산업의 생산성 향상에 비해 가격 인하가 미진하다는 지적이 강하다.”-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2월 9일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미국·일본 등에서도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는 폐지되고 있다. 이를 폐지해 국민들이 양질의 통화품질을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심재철 한나라당 의원(3월 10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기업이 투자활력을 잃지 않는 선에서 지속적으로 통신요금 인하를 추진하겠다. 이를 위해 이동전화 가입비와 기본료 인하를 추진하겠다.”-최시중 방통위원장(3월 28일 2대 방통위원장 취임식에서)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