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회사 CIO는 역량도 있고 성실해 보이는데, 회의석상이나 개인 면담시 꺼내는 용어들이 너무 어려워 의사소통 자체가 힘들 지경입니다.” “IT 분야는 너무 전문적이라서 그냥 CIO에게 맡기고, 사장인 나는 거의 관여하지 않습니다.” 국내 CEO들의 CIO나 IT에 대한 일반적인 평이다.
최근 농협이나 현대캐피탈의 전산 사고로 인해 온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다. 하지만 금융권의 정보보호 침해에 대한 원인과 처방에 대해서는 각양각색인 실정이다. 예컨대 금융권은 IT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차세대 등 투자 비중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평소 CEO의 무관심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이제부터라도 CEO가 IT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혹자는 차제에 최고정보보호책임자(CISO)를 두어 CIO의 과중한 업무를 줄임과 동시에 정보보호를 강화하자는 대안을 제시한다.
하지만 전자와 같은 처방에 대한 반론으로, 우리나라 CIO들이 평소 CEO를 설득하고 협조를 이끌어 내기 위하여 얼마나 노력했는지 반문하고 싶다. 이런 부단한 노력이 전제되지 않는 한, 후자와 같은 CISO 직책 신설 또한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결국 ‘옥상 옥’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의사소통은 그 자체가 사회생활의 기본으로 IT 분야에서만 필요하겠는가? 그리고 의사소통의 기본은 상대방이 한 말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함은 상식이다. 이런 전제가 무너지게 되면 더 이상 논의가 지속되기 어려워 짜증이 나고 무관심해지거나, 심지어는 불필요한 오해도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나라 CIO들은 IT 지식은 해박하나 난해한 용어들을 쉽게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예산과 인력에 대한 최종 권한을 가지고 있는 CEO를 설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제부터라도 CIO들은 성실하고 실력만 있으면, 소통 능력이 없더라도 성공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CEO나 다른 임원들을 설득하는 능력은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성실이나 실력 이상으로 중요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는 그 대안으로 “CIO여, 조직의 용어를 사용하라!”라고 권하고 싶다. 예컨대 고객관계관리(CRM)라는 동일한 용어라도 금융업계 CIO는 금융업에 맞게 그리고 제조업계 CIO는 제조업에 맞게, IT 전문용어가 아닌 해당 조직의 현업 용어를 사용해서 쉽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조직의 용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평소 CIO의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회사의 중장기 전략이나 현업에 대해, 항상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 회사 전략 뿐만아니라 마케팅 등 현업과의 휴먼 네트워크를 꾸준히 강화해야 한다.
나아가 신기술 동향이나 성공 사례를 부단히 수집 분석하고 현업에 가상 적용해 봄으로써, IT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권고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일환으로 대외적인 휴먼 네트워크의 강화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예컨대 산학관연 전 분야에 걸쳐 예비 CIO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CIO클럽’과 적극 교류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것이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서 CIO들의 ‘의사소통’ 역량이 강화된다면 그 특유의 성실함과 실력이 시너지를 발휘하여, CEO의 협조를 용이하게 이끌어 낼 수 있음은 자명하다. 나아가 CISO와 같은 ‘옥상 옥’ 신설에 대한 얘기도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오재인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 jioh@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