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상돈의 인사이트] 존경하는 재판장님

[주상돈의 인사이트] 존경하는 재판장님

 존경하는 재판장님.

 우연히 신문 사회면에서 한 청년의 무모한 강도 사건을 보았습니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을 준비하던 25살 청년이 편의점에 들어가 금품을 훔치려 한 사건입니다. 강원도 춘천에 사는 청년은 흉기를 가지고 편의점 주인을 위협해 돈을 빼앗으려 했습니다. 편의점 주인이 시간을 끌면서 돈을 주지 않자 그냥 달아났습니다. 청년은 경찰에서 “대학 졸업 후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돈이 필요해서 일을 저질렀다”고 말했습니다.

 구차한 변명입니다. 어떤 이유로도 용서받기 어려운 명백한 범죄행위입니다. 경찰 조사결과, 청년은 편의점에서 돈을 빼앗으려고 춘천시 소양로 한 철물점에서 직접 흉기까지 훔쳤습니다. 처음 들어간 편의점에서 범행에 실패하자, 10여 분 뒤 300m 떨어진 또 다른 편의점에 들어가 24살 여성 종업원을 위협하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덜미가 잡혔습니다. 단순한 강도 사건이 아닙니다. 사전에 흉기까지 준비하고 두 차례나 범행을 시도한 특수·연쇄 강도범입니다.

 재판장님.

 강원도 춘천에서 강도사건이 일어난 같은 날, 신문 경제면을 보십시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위기관리대책 회의에서 10월 실업률이 사실상 ‘완전고용’에 가까운 2.9%라고 발표했습니다. 박 장관은 “10월 국내 취업자 수가 전년 같은 달보다 50만1000명 늘어, 50만 명대 시대를 열었다”며 “신세대 용어를 빌려 실감나게 표현하자면 ‘고용 대박’”이라고 자랑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어떻게 취업이 안 돼 강도짓을 저질렀다고 변명할 수 있습니까? 물론 취업자 중 20대는 전혀 늘지 않았고, 30대는 오히려 6만6000명이 줄었지만 50대는 30만 명, 60대는 19만 명이나 증가했습니다. 그래서 항간에는 ‘고용 대박’이 아니라 ‘청년실업 대박’이라는 비판도 흘러나오지만, 귀담아 듣지 마십시오. 어쨌든 대박입니다. 1주일에 한 시간만 일해도 취업자로 분류하는 통계청의 이상한 고용동향지표는 어차피 현실을 반영하지 못합니다. 정부 정책과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었다면, 그거야 말로 정말 바보입니다.

 대한민국에 취업으로 고통 받는 대학생이 어디 한두 사람입니까? 청년실업자들의 분노와 아픔은 더 이상 어제 오늘 일도 아닙니다. 지금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취업하기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겁니다. 해외연수에 어학 자격증은 물론이고 공모전, 인턴, 봉사활동은 기본입니다. 입사 지원서에 눈에 띠는 ‘스펙(Spec)’을 한 줄이라도 더 넣기 위해 해병대까지 지원할 정도입니다. 대학을 다니는 것도 취업을 위해서고, 공부하는 것도 ‘스펙’ 때문입니다. 이런 마당에 ‘강도’ 행각을 ‘스펙 쌓기’로 착각해도 유분수지, 취업이 안 된다고 강도짓을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취업과 실업, 그리고 강도로 검색되는 사건·사고들이 요즘 부쩍 늘었더군요. 이대로 두면, 청년실업자들이 하루아침에 연쇄강도범으로 돌변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막아야합니다. 재판장님도 아시다시피, 근본적인 문제와 원인은 물론 따로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법부가 불합리한 사회 문화나 교육 구조를 직접 법정에 세울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정부나 정치인, 교수님을 처벌하기도 애매합니다. 재판장님은 ‘법대로’ 하는 수밖엔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절대, 어설픈 동정이나 용서는 금물입니다.

 대학을 졸업한 청년이 취업이 안 된다고 강도짓을 저질렀습니다. 우리 눈앞에서 벌어진 현실이지만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상황입니다. 청년들이 한꺼번에 들고 일어나면, 그때 누군가 나서겠지요. 이런 현실이 안타깝고 화도 나지만 꾹 참으셔야 합니다. 나라님도 못하는 데, 재판장님이 고민할 일이 아닙니다.

 주상돈 경제정책부 부국장 sd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