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박·최·정’. 우리나라 사람들에 가장 많은 성이다. 김씨가 가장 많고, 이씨와 박씨 성을 가진 사람이 2, 3위다. 확률적으로 이름이 이니셜로 처리된 신문 기사에서 K씨, Y씨, P씨 노출빈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요즘 한국 사회는 A씨가 넘쳐난다. A라는 성이 붙여진 사람들이 갑자기 늘었다. 한국을 처음 찾은 외국인은 A씨를 최다 성씨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A씨는 특정인의 성 첫 글자를 이니셜로 처리하지 않고, ‘그 사람, 그녀’를 통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부르기 쉽고, 쓰기 편하다.
그런 ‘A씨 효과’는 다양하다. 자신이 진짜 A씨일 경우, 당사자로 지목된 사람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주위의 시선이 왠지 부담스럽고, 행동도 어색해진다. 다만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것에 안도한다. 마음이 진정되면 분노와 함께 가해자 추적에 나서기도 한다.
반면 정작 A씨가 아니면서도 A씨라는 의심을 받은 사람들이 생겨난다. 하지만 내가 아니고, 저 사람이 진짜라고 선언하기도 부담스럽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불신은 절정에 달한다. 사회와 조직 내 신뢰지수는 영하로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인터넷 세상도 결코 다르지 않다. 온라인 폭력을 당한 피해자는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말도 하지 말라’고 입을 막는다. 익명의 폭력을 경험하면 입장이 달라질 것이라고 강변한다. 가깝게는 최근 불거진 학교폭력 사건에서 가해자 역시 인터넷에서는 피해자가 되기도 했다. 한 법조계 인사는 네티즌의 언어와 행동이 도를 넘고 있다고 지적한다. 반면 네티즌은 예전에 비해 표현의 자유가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는 분위기다.
‘익명이냐, 실명이냐’. 한국 사회가 이 문제에서 해법을 못 찾고 있다. 하지만 정부 출범 초기부터 이어져 왔던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논란은 이제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된 것 같다.
지금 국내 인터넷 업계와 학계, 법조계는 헌법재판소 판결에 주목하고 있다. 인터넷 실명제로 불리는 ‘제한적 본인확인제’에 대한 조속한 판결을 통해 우리나라 인터넷 정책이 나아갈 좌표와 방향이 조속히 마련돼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김원석기자 stone201@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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