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훈의 디지털 확대경]이 땅이 뉘땅인데

한국전쟁 직후 혼란기를 틈타 일본이 독도에 대해 더러운 욕심을 드러낼 때 아무 대가 없이 독도수호에 목숨을 건 이들이 있었다. 홍순칠 대장이 이끈 독도의용수비대 33인이다. 울릉도에서 태어난 홍순칠은 한국전쟁 중 부상을 당해 1953년 상이군인으로 제대, 고향으로 돌아갔다.

[최정훈의 디지털 확대경]이 땅이 뉘땅인데

`독도는 우리 땅이니 절대 왜놈이 얼씬 못하게 하라`는 할아버지의 유언을 지키려 스물다섯 나이에 뜻을 같이 하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모아 수비대를 꾸렸다. 사재를 털어 권총, 경기관총, 수류탄을 샀고, 1953년 4월 20일에 독도에 들어갔다. 그해 7월 12일 최초 전투를 치렀다. 독도 해상에 나타난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을 경기관총으로 집중 사격해 격퇴했다. 불비한 무기로 힘겨운 싸움을 치른 수비대는 무기 보강의 절실함을 깨닫고 박격포를 독도에 추가로 들인다.

마실 물도 없었다. 바닷물을 무쇠 솥뚜껑에 끓여 만든 증류수로 목을 축였다. 물고기와 물개 고기로 끼니를 해결했다. 독도 상주 4개월만인 1953년 8월 5일 수비대는 역사적인 기념비를 만든다. 동도(東島) 바위벽에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임을 당당하게 밝힌 `한국령(韓國領)`이란 석 자를 새겨 넣었다.

`한국령`이 새겨진 동도의 바위를 2012년 8월 10일 이명박 대통령이 손으로 어루만졌다. 59년 만이다. 그 사이 대통령이 12명이나 나왔지만 독도를 방문한 건, 한국령을 손으로 만진 건 이명박 대통령이 처음이다. 대통령의 독도 최초 방문은 역사적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59년이나 걸린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일본에서 난리다. 겐바 고이치로 일본 외무상은 “국제사법재판소에 이 문제를 제소하겠다”며 엄포를 놨다. “이달 말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던 한일 장관급 재무회담도 연기하겠다” “한일관계가 상당히 험악해질 것”이라며 협박한다. 야스쿠니 신사참배 강행을 선언하고, 주한 일본대사를 소환하는 등의 맞대응도 준비한단다. 주제넘은 설레발이다. 대한민국 영토를 우리 대통령이 방문하는 데 객들이 뭔 말이 그리도 많은지.

국내 정치권에서도 말들이 쏟아진다. “국면 전환용 정치쇼다” “인기하락을 만회하려는 이벤트다” 등 여야의 말다툼이 한창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독도 문제만큼은 여야 정치권이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혼내 줘야 할 상대는 8년째 방위백서에 남의 땅을 자기 땅이라 적시하는, 버르장머리라고는 반 푼어치도 없는 일본이다.

일본의 우경화가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낼 필요 없다. 우리가 독도 문제를 `목계지덕(木鷄之德)`으로 일관한다 해도 그들의 우경화를 막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한일관계 경색도 우려할 필요 없다. 경색을 자초한 건 다름 아닌 일본이다. 양국 관계를 걱정해 우리 땅을 우리 땅이라 주장하지 못하는 게 후손에게 더 부끄러운 일이다.

이참에 내년 완공예정인 독도해양과학기지 건설 계획을 더 강력히 추진하자. 언제까지 일본을 배려해 완공일정을 미룰 것인가. 우리는 배려할 만큼 배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학생들에게 그릇된 역사관을 주입하며 독도 침탈 야욕을 불태우는 건 다름 아닌 일본이다.

이제는 우리도 결단을 내리자. 더 강해지자.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계기로 독도 수호의지를 강력히 천명하자. 독도의 실효적 지배를 확고히 할 수 있도록 대통령의 독도 방문도 정례화하자. 홍순칠 대장의 수기 제목처럼 `이 땅이 뉘땅인데` 그들의 오만방자함을 지켜보고만 있을텐가.

최정훈 성장산업총괄 부국장 jh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