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제전기통신규칙 개정안 서명…`인터넷 감시` 논란 증폭

우리나라가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새로운 규칙에 서명한 것을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는 `국제기구에서 인터넷에 대해 논의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중국·러시아 등 검열을 일삼는 국가와 방향을 같이 했다”며 정부가 인터넷 검열을 시도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며 비판했다. 정부는 “검열과는 무관하며, 국제 인터넷 관리 체계의 국제기구에 참여하자는 것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14일(현지시간) UAE 두바이에서 막을 내린 ITU 국제전기통신세계회의(WCIT-12)에서 국제전기통신규칙(ITRs) 개정안에 최종 서명했다고 16일 밝혔다. 1988년 제정 이후 24년만에 본문을 개정하고 5개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번 회의에선 ITU가 그동안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 등 민간기구가 행사한 인터넷 관리 권한을 이양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중국·러시아는 정부가 인터넷을 관리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을 키웠다. 이런 논의를 반영해 `ITU 권한 내에서 국제 인터넷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인터넷 논의에 다양한 이해 관계자가 참여하고 광대역 통신개발에 있어 ITU가 역할하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는 골자의 `인터넷 성장 가능 환경조성 노력` 결의문이 채택됐다.

ICANN를 통해 인터넷 거버넌스를 주도하는 미국은 인터넷에 대한 정부 통제권 강화에 강력 반대했다. 테리 크레이머 미국 수석대표는 “정부의 인터넷 개입 및 감시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다”라고 말했다. 영국·스웨덴 등 유럽 국가는 미국에 동조했다.

방통위는 결의문이 중국·이란 등이 주장한 `트래픽 관리`와는 전혀 무관하며 미국 중심의 인터넷 관리·발전 논의에 국제기구가 참여한다는 것에 찬성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회의에 참가한 방통위 관계자는 “트래픽 관리가 검열 이슈로 번진 것은 이를 바라는 중국 정부 주장 때문”이라며 “트래픽 관리 의제가 유보됐을 뿐 아니라 콘텐츠 관련 사항은 다루지 않는다는 조문까지 신설했다”고 말했다.

결의문은 단지 국제기구에서 인터넷 성장을 위해 노력할 수 있다는 선언적 내용에 지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ITRs 적용 범위를 ICT로 확대하려는 시도도 실패, 현행처럼 `통신`만을 대상으로 하게 된다.

이 관계자는 “인터넷 결의문 때문에 서명에 참여하지 않은 측은 국제 인터넷 주소체계 등에서 미국이 패권을 쥐고 있는 현행 체제를 인정한다는 의미”라며 “여러 정치적 이유가 반영된 결과”라고 덧붙였다.

인터넷 업계 관계자는 “(트래픽 관리 규정 등이 빠지면서) 인터넷을 통제하려는 시도가 일단 벽을 만났다”면서도 “하지만 향후 서울사이버스페이스총회나 부산 ITU 전권회의 등에서 인터넷 통제에 대한 논의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번 회의에 참석한 151개국 중 우리나라를 포함한 89개국이 ITRs 개정안에 최종 서명했다. 미국·영국·스웨덴·호주·일본 등 20여개국은 최종 서명에 불참하고, 나머지 국가들은 추후 서명여부를 통보하겠다고 밝혔다.

로밍요금 정보 제공, 경쟁을 통한 로밍 요금 인하 유도, 발신자 번호전달 노력 등 본문 규칙 개정과 `개도국 및 도서국 국제 광대역망 접속 지원` `국제 긴급서비스 번호 통일 노력` `ITRs 정기적 개정 노력` `국제전기통신 트래픽 착신 및 교환의 정산 노력` 등의 결의문도 포함됐다.

한세희기자 hahn@etnews.com,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