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난처한 순간 중 하나가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하는 경우다. `혹시나`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가능성을 낮게 보는 것이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기대를 품기 때문이다.
밤 늦은 시간 혹시나 해서 지하철역으로 뛰어갔더니 역시나 막차는 이미 떠나버린 뒤다. 두통에 시달리던 휴일 날 혹시나 해서 집 앞 약국에 갔더니 역시나 기다리는 것은 굳게 닫힌 약국 문이다.
그래도 이만한 일들은 좀 나은 편이다. 지하철이 끊겼으면 택시를 타면 되고, 집 앞 약국이 문을 닫았으면 근처에서 휴일에 문을 여는 당번 약국을 찾으면 되니까 말이다.
26일 벌어진 또 한번의 `혹시나, 역시나`는 딱히 대안을 찾기 어려운 일이어서 더욱 난감하다. 지난 14일과 18일 이미 두 차례의 처리 시한을 넘긴 국회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가 또다시 난항이다. 방송통신위원회 방송 규제 기능 이관 문제를 둘러싸고 여야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민이 뽑은 새 정권이 출범하는데 야당이 발목을 잡는다는 주장, 야당으로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은 당연하다는 반론이 한치 양보 없이 맞선다. 전날 대통령이 공식 취임한데다 이제는 정말 시간이 부족하기에 `혹시나` 했는데 결과는 `역시나`가 되버렸다. 조직개편안 처리를 가장 관심 깊게 지켜보던 공무원들도 역시나 하며 한숨을 내쉰다.
새로운 장관을 반갑게 맞이하지도, 현직 장관을 떠나보내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황이 계속될 전망이다. 소속 부처가 바뀔 것으로 예상되는 공무원들은 적극적으로 일을 하기도, 그렇다고 일손을 놓기도 애매한 상황이 이어진다. 그 사이 숙제는 쌓여가고, 쌓인 숙제가 결국 부실·날림 공사를 낳을까 우려된다.
새 정부 출범 후 여야 간에 새로운 협력관계가 마련될 것이라는 혹시나 하는 기대도 결국 역시나로 끝나는 것일까. 혹시나 일어날지 모르는 반전 가능성에 다시 기대를 건다.
이호준 성장산업부 차장 newleve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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