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학자가 신음한다]<하>인식에서 제도까지 전면 바꿔라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연구실 안전환경 조성법 개정 후 건강검진 경험 비율

이공계 여성 연구원의 위험한 근무 환경을 해소하기 위한 첫 번째 과제로 실험실 환경 조성이 꼽혔다. 건강 검진을 강화하고 전문 안전관리 담당자뿐 아니라 여성 연구원을 위한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이공계 여자 대학원생 450명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 실험실 근무 이후 61.3%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응답했다.

김영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임신과 출산이라는 측면에서 지금은 건강하지만 실험실 유해 환경이 노출될 때 태어날 아기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걱정했다”며 “죄책감을 가지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유해물질을 다뤄 직접 피해를 받는 것에 더해 유해 환경에 노출됐다는 사실만으로 이공계 여자 연구원에게 스트레스를 준다는 것이다. 응답 학생 가운데 주로 고통을 호소하는 증상은 피로·피부문제·두통·생리불순 등이다.

이공계 과학자의 건강을 위해 가장 우선돼야 하는 것은 근무 환경 개선이다. 하루 10시간 가까이 실험실에서 상주하는 연구원을 위해 실험실과 연구실(사무실 혹은 준비실)을 분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영택 연구위원은 “해외 사례처럼 유해물질을 다루는 실험실을 따로 운영해 대학원생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실험실 설치 기준을 제정하고 안전 점검을 강화해야 한다. 일반 기계·전기 설비와 화학물질·미생물·방사선 등을 다루는 실험실 특성에 맞춰 안전 유지·관리 규정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안전 통제를 위해 실험실 안전관리 담당자를 확충하고 안전 교육을 강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지난해 조사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한 대학에 안전 환경관리자가 50명 정도지만 우리나라는 한두 명에 불과했다.

건강검진 강제 조항도 강제할 필요가 있다. 법률상 건강 검진 대상은 실험실에서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대학원생이다. 그러나 대상자가 건강검진 통보를 받고 기간 내 검진을 받지 않아도 학생·학교에 과태료나 벌금 등 아무런 제재조치가 없다.

1차 인프라 개선도 중요하지만 이공계 여자 연구원의 불안감을 덜어주는 것도 시급하다. 김 연구위원은 “실험 결과와 성과에 스트레스로 몇몇 학생은 생리불순과 생리변화를 일으키고 심각한 피로나 소화 장애를 겪고 있다”며 “학생은 심리 상담을 하는 상담소가 학교 안에 있거나 건강 검진에서 다루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교내 정신보건 간호사를 배치해 학생 정신 상담과 정서적으로 도움을 주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혜숙 WISET 소장은 “환경에 관심이 늘고 있는데 이는 이공계 실험실에서도 예외가 아니다”며 “안전한 실험실에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여성 과학자가 안심하고 실험에 전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유해 실험실 환경 때문에 임신·출산하는 여성 과학자 경력이 단절되지 않도록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연구실안전환경 조성법 개정 후 건강검진 경험 현황

[여성과학자가 신음한다]<하>인식에서 제도까지 전면 바꿔라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