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케팅의 미래]<2>사회관계망의 새판 `애니팡`

문화마케팅연구소 이호열 공장장(culturemkt@culturemkt.com)

그야말로 신드롬이었다. 모바일 게임 `애니팡`은 지난해 10월 누적 다운로드 2000만 건을 돌파했다. 일일 이용자가 1000만 명이 넘었고 하루 실행 회수가 2억 회에 달했다. 인기 절정일 땐 사용자가 하루 1억 개 하트를 주고받았다. 이를 발판으로 게임제작사 선데이토즈는 월 매출을 100억 원까지 끌어올렸다. 게임 콘텐츠 자체만 놓고 보면 기이하다고 표현할 만한 인기다. 왜냐하면 애니팡은 전혀 새로운 형식도 아니고 최근 콘텐츠산업의 핵심인 스토리텔링적 요소도 없기 때문이다.

[문화마케팅의 미래]<2>사회관계망의 새판 `애니팡`

`스토리 없는 게임`도 성공한다. 과거 일본산 아케이드 게임이 주를 이루던 전자오락실은 다양한 이야기 집합소였다. 동전 몇 개면 마리오 형제가 되어 공주를 구출하기 위한 모험을 떠날 수 있었고, 적의 미사일을 피해 전투기를 조종하고, 4번 타자가 되어 짜릿한 역전 홈런을 날리기도 한다. 이렇게 게임에는 기본적으로 이야기가 있다. 게임 장르와 개별 게임 특성에 따라 이야기적 요소가 많거나 적을 뿐이다. 특히 롤 플레잉이나 시뮬레이션 장르의 온라인 게임은 스토리텔링의 비중이 매우 높다.

하지만 퍼즐게임 장르는 예외다. 퍼즐게임 시장 개척자 `테트리스`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7가지 서로 다른 모양의 블록이 위에서 끊임없이 내려올 뿐이다. 이야기가 없어도 테트리스 인기는 오늘날까지 변함이 없다. 게임시장 환경이 바뀌어도 거기에 최적화된 새 버전 테트리스가 곧바로 나온다. 엄청난 적응력이다. 하지만 기본 틀이 흔들린 적은 없다. 단순함과 중독성이라는 그리고 익숙함이라는 퍼즐게임 최대의 장점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애니팡도 마찬가지다. 여러 동물의 얼굴을 상하좌우로 이동시킬 뿐 이야기가 없다. 비슷한 게임 `주키퍼`는 “위기의 동물을 짝지어 구출한다”는 설정이라도 있지만, 애니팡은 이마저 생략했다. 모바일시대 게임에게 이야기는 흥행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요소인가 의문이 들 정도다.

애니팡을 다운로드하게 되는 경로를 살펴보자. 앱 스토어를 직접 검색해서 시작한 유저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 지인 초대 메시지를 받고 게임을 시작한다. 지인 초대는 사회적 관계에서도 `매우 은밀한 방식`으로 볼 수 있는데, 유대를 강화한다. 동시에 게임을 하는 동안 `누구와 마주칠까` 즉 어떤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이 생긴다.

대부분의 `소셜네트워크게임(SNG)`은 이야기를 게임 안이 아니라 밖에서 만든다. 애니팡이 가장 확실한 사례다. 게임을 공유하는 지인 사이에 순위가 매겨지고, 평소에 연락이 뜸하던 이에게 하트를 보내기도 한다. 애니팡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일종의 매개체 기능으로 발전했다.

싸이월드 시절에도 애니팡은 SNG 특성을 부각시키려 했다. 하지만 효과가 극대화된 시점은 모바일 메신저로 플랫폼을 변경하면서부터다. 개인 홈페이지를 기반으로 하는 PC네트워크에 비해서 스마트폰에 저장 등록된 전화번호부를 기반으로 하는 모바일메신저는 쉽고 빠르게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할 수 있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는 애니팡이 단골 소재로 쓰였다. 누군가 새벽에 자꾸 하트를 보내는데, 자신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는 식이다. 코믹한 상황이지만 새로 구축된 관계망에서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이 일종의 판타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설명하고 있다. 애니팡은 게임이라는 콘텐츠가 장르적 혁신 없이도, 단지 어떤 플랫폼과 결합하느냐에 따라 혁신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 애니팡 성공 이후, 스마트폰 주소록과 연동시킨 비슷한 형식 게임들이 매달 수 십 개씩 쏟아지고 있다. `캐주얼 게임`이라 불리는 이들은 퍼즐, 슈팅, 레이싱 등 소재가 다르지만, 하나 같이 사회적 관계망에 기반을 둔다는 공통점이 있다.

애니팡 이후 캐주얼 게임 시장은 절대적 강자가 없는 춘추전국 시대가 이어지고 있다. 애니팡의 권좌를 물려받을 누군가는 애니팡의 성공방법을 답습하지 않고, `애니팡 신드롬`이 만들어진 과정을 새롭게 재현하려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