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 원자력발전소(원전)인 고리 1호기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한국 첫 원전 폐로다.
국가에너지위원회는 지난 12일 고리원전 1호기 영구 가동 정지를 한국수력원자력에 권고하기로 결정했다. 한수원은 오는 16일 이사회를 열어 권고안 수용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지만 이변이 없는 한 정부 권고를 받아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고리 1호기는 1978년 상업운전에 들어간 한국 첫 원전이다. 2007년 설계수명이 다했지만 한 차례 계속운전 허가를 받아 수명이 10년 연장됐다. 이젠 연장된 20년 기간도 모두 지나 정부가 공식적으로 폐로 필요성을 언급했다. 한수원이 수명연장 신청 마감일인 18일까지 계속운전 신청서를 내지 않으면 고리 1호기는 자동적으로 폐로수순을 밟게 된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원전 산업의 중장기적 발전을 위해 영구 정지가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를 한수원에 권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고리원전 1호기 영구 정지 결정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37년간 운영된 노후 설비로 그동안 사회 각계로부터 폐로 요구에 시달려 왔다. 그나마 지금까지 가동할 수 있었던 것은 전력수급 불안과 저렴한 발전원가 덕이었다.
지난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노후 원전 유지 부담은 더 커졌다. 전력수급 안정과 저렴한 생산원가 명분은 전력공급 확대와 유가하락을 동반한 전력가격 인하 상황에서 설자리가 좁아들었다.
고리 1호기 이후 두 번째 수명연장 시험대에 올랐던 월성 1호기로 인한 갈등도 영향이 컸다. 결국 계속운전 통지서는 받아냈지만 이 과정에서 충돌과 불신 등 많은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발생했다. 정부 입장에선 이미 한 차례 수명을 연장했던 원전에 다시 같은 결정을 내리기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현실적 판단도 작용했다. 고리 1호기는 설비용량 587㎿로 최근 건설된 석탄화력이나 가스복합화력과 비교해도 전력생산량이 적다. ‘원전=대용량’이라는 등식이 성립되기에 노장이 된지 오래다. 재차 수명을 연장한다 해도 과거처럼 경제성을 담보할 수 없다.
12일 에너지위원회도 이 점을 지적했다. 일부 위원은 고리 1호기 계속운전 경제성에 불확실성이 있다고 봤다. 단순히 원가와 운영비로만 계산하면 이용률 80% 수준에서 1700억~2600억원 정도 경제적 편익이 예상되지만, 지역지원금 등 사회적 비용도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해부터 전력공급이 늘어나 도매가격이 하락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도 중요한 배경이다. 발전업계에서 공급력 포화와 전력가격 폭락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에 발전소 유지보다는 단계적으로 감축을 진행하는 정책 변화가 필요했다. 7차 전력수급계획에서 원전만 2기 추가한 상황에서 고리 1호기까지 재가동할 경우 발전원간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정부는 고리 1호기 영구 정지를 원전 폐로산업 육성 기점으로 삼을 계획이다.
세계 원전시장은 초창기 건설된 원전 폐로주기가 다가오면서 해체산업에 주목하고 있다. 현재 가동을 정지해 해체를 기다리고 있는 원전은 140여기로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관련 해체시장이 2050년 1000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가에너지위원회 역시 고리 1호기 영구정지를 통해 해체산업 육성과 설계, 건설, 운영, 폐로, 해체, 환경복원까지 원전산업 전주기 경쟁력을 확보하자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원전 해체시장이 2030년께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향후 15년 동안 고리 1호기를 해체하면서 관련 경험과 기술을 축적한다는 방침이다.
우리나라는 원전 해체를 위한 핵심 기반 기술 38개 가운데 오염 토양 처리 기술 등 17개 기술을 개발해 상용화한 상태다. 원전 해체 핵심인 주거지역 오염 복원 기술, 고방사성 폐기물 안정화 기술, 우라늄 폐기물 처리기술 등 21개는 아직 개발 중이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현 시점에서 고리 1호기는 계속운전을 할 명분도 적고 두고두고 리스크만 떠안게 된다”며 “정부 결정은 현실적 상황과 함께 원전에 대한 사회적 반감을 줄이기 위한 판단이 반영된 결과”라고 밝혔다.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