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3주년 특집]안충영 동반성장위원장 “대기업, 압축성장 신화에서 벗어나야”

바라보는 눈이 많을수록 필요한 것은 확고한 자기 신념이다. 넓게 의견을 듣고 유연하게 반영하되 신념이 흔들려선 안 된다. 안충영 동반성장위원장의 동반성장 신념은 거칠지만 곧고 뿌리가 깊다. 그가 지난해 동반성장위를 맡은 것도, 1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위원회에 기업 신뢰가 한층 두터워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창간 33주년 특집]안충영 동반성장위원장 “대기업, 압축성장 신화에서 벗어나야”

안 위원장은 “대기업은 압축성장 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소기업은 적합업종 선정에 안주하면 안 된다”고 직언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법제화는 대중소 기업간 협력의 고리를 끊는 것”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가을로 접어드는 9월의 오후, 동반성장위에서 안 위원장을 만나 그간 소회와 앞으로 나아갈 길을 묻고 들었다.

-8월 취임 1년을 맞았다. 그동안 어떤 활동에 주력했나

▲세계적 금융위기로 경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그동안 소상공인, 자영업자, 중소기업 생존권 확보와 자활 능력 고취에 노력했다.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장점을 연계해 상생 기업 생태계를 만드는데 노력했다.

집중 추진한 사업 중 하나가 상생결제시스템 운영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거래에서 물건 값을 제때 지급하는 게 중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 4월 도입한 상생결제시스템은 의미있는 제도다.

대중소 해외 동반진출도 강조하고 있다. 국내시장은 협소한데 우리 중소기업 중 수출에 직간접 관여하는 비율은 15%에 불과하다. 중소기업이 글로벌 마인드셋(사고방식)을 가져야 한다. 해외와 접촉하며 좋은 제품에 자극을 받고 더욱 품질향상에 힘을 써야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경제적 상황에 비춰 동반성장은 어떻게 확산해야 할까.

▲우리 경제는 수출과 내수에서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 동반성장 철학 공유와 실천에 해법이 있다고 본다. 우리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새로운 기술기반형 동반성장을 모색해야 하는 시대적 전환기를 맞았다. 대기업 기술력과 중소기업 다양성이 결합되면 우리 경제가 상생 선순환 할 수 있다. 하지만 양자간 정보, 지위, 거래과정에 비대칭성이 있다. 비대칭성을 줄이면 부품과 소재 조달 거래비용을 줄일 수 있다. 앞으로 이 부분에 노력하고자 한다.

-박근혜 정부 초기 경제민주화가 대두되며 동반성장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관심이 낮아진 것 같다.

▲경제민주화는 경제활성화와 더불어 우리가 해결해야 할 엄숙한 시대적 과제다. 이런 점에서 최근 관심이 낮아지고 있다는 지적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동반성장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가 널리 퍼져있다. 특히 대기업은 동반성장 전담조직을 만들어 일시적 대응이 아닌 지속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한 노동, 교육, 공공, 금융 4대 개혁을 관통하는 것은 동반성장의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경제 선진화를 위해 각 분야에서 동반성장은 핵심이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 실효성을 두고 이견이 끊이지 않는다. 장점과 단점은 무엇이고, 향후 발전 방안은 무엇인가.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는 장기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이자 지속성장 방안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자율합의로 민생품목과 재래시장, 소상공인 영역을 일정기간 보호하며 경쟁력을 키우는 게 목적이다.

일각에서 적합업종 실효성 강화를 위해 적합업종 법제화를 주장한다. 하지만 중소기업 적합업종 법제화는 제도적으로 진입장벽을 설치하는 것이다. 자유무역협정(FTA) 최다 체결국으로서 통상법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동반성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공존하며 성장하자는 것이다.

대기업 사업 확장을 제한하는 게 외국 기업의 국내 시장 잠식을 유인한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거나 과장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위원회는 정확한 사실을 알려 제도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있다.

-올해 본격 운영한 상생결제시스템에 관심이 높다. 현황은 어떻고 활성화 계획은 무엇인가.

▲8월말 기준 총 운용액은 5조9000억원에 달하고 134개 대기업이 협약에 참여했다. 151개 동반성장지수 평가대상 기업 중 42개가 협약에 참여했다. 109개 미협약 기업도 크게 관심을 보이고 있어 연말까지 숫자는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상생결제시스템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도급 계약 적정 단가를 제대로 설정해야 한다. 하도급 업체에 불합리한 금액 산정은 없었는지 살피고, 불공정한 행위와 부실경영을 막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동반성장지수 평가는 어떻게 운영하고 있으며 발전 방향은 무엇인가.

▲동반성장지수는 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가 함께 동반성장 노력을 평가해 우수, 양호, 보통, 개선 4등급으로 매긴다. 지수 평가시 협력업체에 대금은 제때 지불하는지 등 공정한 거래 여부를 많이 묻는다. 평가 후 대기업에서 의미있는 변화가 생기고 있다. 대기업 사고방식이 변하는 모습이 보인다.

요즘 일자리 문제가 심각하니 대기업과 중소기업 협업시 고용창출 효과가 얼마나 나타나는지 평가해 지수 평가때 가점을 주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 같은 사업이라도 고용 유발이 큰 분야는 확산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과 1차협력사간 동반성장과 함께 2, 3차 협력사로 동반성장 분위기를 확대하는 것도 과제다. 중소기업이 특정 대기업에만 납품 가능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대기업간 동반성장도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2, 3차 협력사로 동반성장 과실을 확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다. 2차 이하 협력사가 가진 문제로는 납품단계 후려치기, 갑질문화 등이 있다. 특히 납품대금 결제 지연은 과감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대기업간 협력은 위원회 업무 영역은 아니지만 중요한 문제다. 세계적 제약회사는 치열한 경쟁관계에 있으면서도 비용 절감과 리스크 저감을 위해 협력을 한다. 중소기업의 우수한 성과는 함께 나눈다. 이런 협업 문화가 우리 대기업 사이에도 필요하다. 이렇게 되면 중소기업과도 협력 체계가 만들어진다.

-동반성장은 어느 한 주체의 일방적 노력으로는 이룰 수 없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각각 주문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오늘날 우리 기업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성장이다. 지속성장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은 ‘이익 추구’가 아니라 ‘사회적 공감’이다. 기업은 모든 가치의 공유를 실천하고 그것에 기반한 기업 이미지를 새롭게 창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나의 이익은 상대방 손해에서 얻어지는 것’이라는 고전적 제로섬 개념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기업은 스마트한 리더가 돼야 한다. 세계시장 개척을 위해 대형 선단을 이끌고 가는 기함역할을 해야 한다. 협력 중소기업은 스마트한 파트너로 거듭 날 수 있도록 역량을 갖춰야 한다. 포화상태에 이른 국내시장에서 벗어나 대기업이 가진 네트워크를 활용해 해외 동반진출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

대기업은 압축성장의 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경제 양극화는 압축성장의 결과물이다. 50년의 압축성장을 벗어난 지금 새로운 변화가 요구되며 핵심이 동반성장이다.

-12월이면 위원회 출범 5주년을 맞는다. 그동안 성과와 의의는 무엇인가.

▲5년 동안 많이 노력했지만 아직도 할 일이 많다. 동반성장 필요성에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여전히 대기업 노력이 더 필요하다. 대기업이 사내유보금을 쌓아두는 것은 적절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위원회는 중소기업의 창의적 아이디어에 지속 투자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서는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대기업과 공기업의 구매를 전제로 한 ‘구매조건부 신제품개발사업’과 정부·대기업·중소기업이 공동으로 기술개발펀드를 조성해 구매하는 ‘민관공동투자 기술개발펀드’ 등을 바탕으로 중소기업 기술개발을 지속 지원하겠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계약에 따라 성과를 공유하는 성과공유제도 확대해야 한다. 177개 기업이 성과공유과제 5465건을 체결해 협력적 산업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앞으로는 성과공유제를 확대해 대기업과 1차, 나아가 2·3차 기업간 성과를 공유하는 ‘다자간 성과공유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앞으로 활동 계획은 무엇인가

▲동반성장 문화 확산과 자율 정착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겠다. 중소기업 글로벌화, 상생결제시스템 정착,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 경쟁력 강화, 중소기업기술 보호를 위해 노력하겠다.

대담=홍기범 경제과학부 부장 kbhong@etnews.com

정리=

유선일기자 ysi@etnews.com